피움톡톡

[감독과의대화] 어디에나 있기에 보이지 않는, 폭력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9. 28. 19:33

 

어디에나 있기에 보이지 않는, 폭력

  - 영화 <집>, <마침내 날이 샌다>, <달팽이> -

 

 

928일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영화 <>, <마침내 날이 샌다>, <달팽이>가 함께 상영되었다.

<>은 친구에게 엄마역할을 하는 소녀가 겪는 폭력을, <마침내 날이 샌다>13살 소녀의 험난한 성장 스토리를, <달팽이>는 폭력의 가해자·피해자·방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10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10대 청소년들에게 흔히 개입하곤 하는 부모님,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은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환 감독의 <>

 

얼짱 여고생 미정은 친구 상희를 엄마라고 부른다. 상희는 미정과 미정의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엄마노릇을 한다. 그러나 못생기고 뚱뚱한 상희는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된다

 

미정이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미정의 남자친구는 미정과 상희를 때린다. ‘네가 부추겼지!’라며 상희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 똑같이 가해자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미정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상희는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 되돌아온다. 상희는 미정에게 짐짓 괜찮은 척을 하며 맞아도 안 아프다, 괜찮다 한다. 영화는 상희가 미정에게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것에서 끝난다.

 

<>은 엄마라는 존재에게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드러낸다. 욕먹고 맞고 당해도,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참으며 괜찮은 척 하는 엄마라는 존재의 모습을 그린다. 그 모습은 결코 모성이란 말로 치장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한인미 감독의 <마침내 날이 샌다>

 

오빠와 오빠의 여자친구가 집에 오면, 13세 소녀는 그들을 엿본다. 소녀의 오빠가 경험하는 성은 하나의 자랑거리, 성장 스토리가 된다. 소녀는 채팅으로 한 고등학생을 만나지만, 그와의 관계는 녹록지가 않다. 그는 소녀에게 옷을 사준다 하지만, 소녀는 거부하고 달아나버린다. 화가 난 고등학생은 소녀에게 폭력적인 전화를 걸어 복수한다.

 

그의 전화에 놀란 소녀는 부모님과 오빠를 찾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소녀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존재는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이 아니라 옆집 어린 꼬마다. 그럼에도 영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해서, ‘멀리 보라고말한다.

 

그러나 멀리 봐라. 먼 산을 봐라라는 조언은 소녀에게 밝은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아무리 멀리 보아도, 보이는 건 빽빽한 아파트와 간간히 보이는 나무, 매연 때문에 오히려 뿌옇게 보이는 먼 산뿐이다. 마치 10대 소녀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 성적인 약자로서 겪어야만 하는, 폭력과 차별로 점철된 일상이다.

 

 

 

                                                                                   <달팽이> 중에서

 

진성민 감독의 <달팽이>

 

달팽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점액을 분비하는 존재다.

 

<달팽이>속 성환은 손톱에 엄마 매니큐어를 바르는 게 좋다. 친구인 현호도 함께한다. 그러나 현호는 매니큐어를 발랐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에 시달리지만, 현호는 모른척한다. 힘센 종필은 성환에게 왜 너는 현호를 놀리지 않느냐너도 게이냐라고 몰아세운다. 그러자 성환은 앞장서서 친구인 현호를 괴롭힌다.

 

<달팽이>의 성환은 지극히 달팽이와 닮았다. 게이로 몰리지 않으려고, 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일상적인 모습이다. 빨갱이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 남을 빨갱이로 몰아야만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성환, 현호, 종필이 등장하는 공간은 남고다. 남자다움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스스로가 남자답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곳. 종필에게, 친구였던 성환에게 당하는 것에 지친 현호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나름의 복수를 보여준다. 극단적 폭력에 지친 현호가 자살하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그런 복수가 아니다.

 

현호는 금발 머리에 과장된 화장을 하고 나타나 반 아이들 앞에서 자기 성기를 내보인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처럼 꾸미고 싶다는, 이런 자신이 전혀 창피하지 않다는 표현이다.

 

 

상영 후에는 영화가 던진 이슈에 대해 말해보는 '피움톡톡(Fiwom Talk! Talk!)'이 진행되었다. <달팽이>의 진성민 감독, 조중헌 박사,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활동가가 참여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뜻밖의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놀래킨 <달팽이>의 진성민 감독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조중헌 박사(왼쪽)와 <달팽이> 진성민 감독

 

현호(피해자)-성환(방관자)-종필(가해자) 구도를 만든 이유는?

 

남중, 남고를 다녔다. 남성적인 것이 올바른 것인 환경이었다. 중학생 때 여자 같다며 놀림받은 친구가 있었지만,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경험이 <달팽이>를 만든 게 아닌가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호가 그 나름의 복수나 대응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호와 성환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한 관객은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라고 조중헌 박사에게 물었다.

 

자신을 옥죄는 것이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는 남자 아이에게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엄마라는 존재에게는 참아야 한다고,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팽이> 속 가장 싸움을 잘하고 남자다운 종필 마저도, 성환이 자신의 말에 소심한 반대를 하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남자다움이 훼손되는 것을 참지를 못한다.”라며 조중헌 박사는 평했다.

 

조박사는 남성다움을 강조하고, 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여성, 일부 남성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기준을 비판해라. 허구성을 깨달아라.”고 덧붙였다.

 

남성적인 것(정상) 그렇지 못한 것(비정상)을 나누고 차별하는 세상에서 폭력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폭력과 차별은 특별한 누군가만이 접하는 것이 아니다. , 학교, 직장 그 어디를 가든 존재한다. 한국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폭력을 세 영화가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