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움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돌아보며] 발길을 끊기 어려운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6. 17:07

 

발길을 끊기 어려운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이 말을 걸고, 나는 말하게 된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돌아보며 -

 

 

9월 28일을 마지막으로, 2014년의 여성인권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 개막과 폐막이 있고, 그 사이의 기간동안 영화제를 만들어 내는 모든 사람들은 꿈을 꾸는 것처럼, 다른 세계에 갔다가 온 느낌을 가지고 시작과 끝을 바라본다. 또한, 끝이 난 후에도 꽤 긴 시간동안, 그 꿈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축제가 가진 마력, 그 마력은 영화제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이번 여성인권영화제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오랜시간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은 예감을 떨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여성인권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오래전이었다. 2006년 2007년 즈음, 우연히 발을 딛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한국여성의전화를 알았고, 잠깐동안 자원활동을 했었다. 긴 시간 동안 자원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감정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한없이 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없이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길이기도 하고, 여전히 할말을 잃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길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동안의 자원활동을 끝내고, 영화를 전공하고 있었던 나는 그래도, 이 영화제만큼은 꼭 사수하고자 했다. 가끔 삶에 넋이 나가 기간을 놓치는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이 맘때쯤에, 여성인권영화제를 떠올렸다. 이렇게 피움은, 내게 발길을 끊을 수 없는 하나의 영화제가 되었다.

 

피움은 내게 어떻게 말을 거는가?

 

사실, 영화제를 놓고 이야기를 할 때 관객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관객 모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피움이 어떻게 말을 거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에서 시작한 작은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말을 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영화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은 영화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 색깔, 존재의 이유 등 수 많은 요소들을 잘 알고 있지 않아도,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사람들, 서로 다른 서사를 지닌 개인들이 모이지만,  영화를 보러 온다는 사실 자체로도, 영화제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어느정도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제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제가 가진 의미, 특성들을 그 자체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피움은 영화제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려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러 오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영화제가 가진 의미들이 몸에 실려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 안에, 영화제의 색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설령 '여기서, 이런 영화를 왜?' 라고 의문을 품었던 영화에서도, 영화제가 굳건히 가지고 있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 두려워하던 것들과 직면하는 기회 

 

이번 해 피움에서 본 영화들은, 내게 자유를 주었다. 영화제 동안 영화들을 보면서, 긴 여행을 갔다온 것 같았다. 영화 속에 펼쳐진 수 많은 얼굴들과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주었다. 개인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 의심하고 있었던 것들,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들과 직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전에 무수한 영화들을 볼 때와는 정말 다르게 영화를, 영화 안에 펼쳐진 세계 그 자체를,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사유로서의 영화가 아닌, 영화 그 자체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의 영화제였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영화의 세계는 너무도 긴 여정과 같았다. 긴 여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부과된 이름들을 하나씩 털어내보이면서, 자유로움으로,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다시 한번의 믿음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움과 믿음, 그리고 수많은 영감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이 말을 거는 방식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피움이 관객들로부터 만들어 지는 영화제라는 것은, 이 영화제가 관객들 개개인에게 말을 걸고,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유로움, 믿음, 영감들이 영화제 공간에서 교차하며, 그 교차함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관객은 영화와, 이 영화제와 한대 뒤엉켜 버린다. 피움은 이렇게 관객과 함께 숨쉬게 되고, 그들의 개인적인 서사에 끼어들게 된다. 여기에 피움의 의미가 존재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움이 가진 의미와 색채들은, 사유로서가 아닌 느낌으로서 더 강하게 스며드는 것이다.

 

피움이 끝난 후,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마지막 영화를 보고, 부대행사를 살짝 맛본 후에 나는, 같이 영화를 본 친밀한 사람과 무척이나 긴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시간 그 사람과 걸으며, 많은 것들을 다시금 곱씹고, 꿈꾸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며, 새삼 두근거렸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피움이 보여준 것들의 힘을 생각해 보게 된다. 대화의 가능성, 그것이 또 다른 힘이 아닌가. 이 대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흐를 수록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속 이어지는 가능성들의 그림들이 눈앞을 스친다.

이렇게, 피움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제 기간은 짧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여운에 휩싸여 있다. 이는 영화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영화제라는 공간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여운은 남아, 끊임없이 말을 걸 것이다. 어제, 내가 누군가와 긴 시간 대화를 한 것과 같이 삶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대해, 앞으로 펼쳐진 그림들에 대해, 말 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누군가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며, 누군가는 꿈을 꿀 것이며, 누군가는 다시 아픈 시간을 겪어낼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여운이 끝난 그 자리엔, 다시 지펴진 피움이 또 다른 여운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유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