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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 그라운드] 학내에서 '학내 성폭력'을 외치다.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18. 03:29

학내에서 ‘학내 성폭력’을 외치다
- 다큐멘터리 <헌팅 그라운드> -

 

 21세기 대학은 기업이다.

 대학이란 어떤 공간인가. 지식의 상아탑, 학문의 전당. 사람들에게 각인된 대학의 이미지는 이와 같은 고고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사회가 시장 자본주의 속에서 돈과 경쟁으로 물들어 버린대도, 대학은 언제까지나 정결하게 제 자리를 지킬 것만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이라는 ‘이미지’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이야기 해보자. 진짜 우리 사회의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인 서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서열화된 대학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해당 대학이 어떤 학문을 어떻게 가르쳐주는가 보다는 해당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가, 사람들의 더 큰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21세기 우리 사회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보다는 대학의 이름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화된 대학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그/그녀들의 일이 끝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다. 대학은 그들의 이미지를 굳건히 유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상승하는 데에 힘쓰면 된다. 그러나 대학은 상품이면서 동시에 해당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울타리가 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그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이다.

 대학의 울타리는 그들에게 놓인 높은 벽이었다.

 이처럼 학생들은 대학 속에서 살아가고, 이 대학 속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또한 학부모들은 대학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학의 이미지는 언제나 정의로웠고 고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들에게 놓인 대학을 보며 깨닫는다. 그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대학의 울타리는 타인에게 높은 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도 한없이 높은 벽이었다는 것을.

 대학이 가진 명예로운 이미지라는 틀 속에 갇힌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학내 성폭력의 생존자임을 밝힐 수도 없게 만들었다. 대학은 명백한 피해자인 그들에게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도리어 비난하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다. 생존자를 보호하는 데에 앞장서기는 커녕 학교에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촉망 받는 가해자의 대변을 하기에 바빴다. 영화 속에서 논해진 대다수의 미국 대학은 성폭력 사건을 인정함으로써 학내 학생들을 가해자의 사냥터(헌팅 그라운드)에서 보호하기 보다는, 현재의 명예 유지와 기부금을 끌어올 수 있는 재원-가해자를 택했다. 생존자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은 경험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대학의 벽 앞에서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작 헌팅그라운드 스틸 컷>

 

 “당신이 겪기 전까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Till it happens to you, you don't know.)”

 대학의 울타리 속에 은폐된 학내 성폭력 문제는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임을 외쳤던 두 명의 여학생들에 의해 미국 사회는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학교 당국과 함께 그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라며 외면했던 사회에게, 그들은 말했다. 가장 사적이고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며, 어느 날 성폭력을 당했다. 나는 성폭력의 생존자다.’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이해해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그 하나의 울림은 미국 전역의 아우성이 되었다. 생존자들은 연대했고, 생존자들이 아닌 이들도 연대했다. 학내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대학은 자신의 명예로움을 지키기 위하여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귀를 열었을 때 정작 불명예스러운 것은 성폭력 생존자들의 고백이 아닌 귀를 막았던 대학 자신이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가장 불명예스러운 부정(不正)한 대학의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생존자들의 연대와 지지는 그들의 대학을 바꾸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원동력을 추동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백과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지지였다.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최근 ‘고대 의대생 사건’와 같이 수면위로 드러난 학내 성폭력 문제조차 대학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불명예스러운 일로 학교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내년에도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할 것입니다.” 라는 영화의 문구처럼 한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학내 성폭력이 그저 가끔의 특별한 이슈로만 드러났던 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조건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살펴보자. 이제 미국의 그(녀)들이 고백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생존자들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대학의 벽을 넘지 못한 학내의 목소리에 따뜻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자.

 그녀들의 고백과 우리들의 따뜻한 연대가 만날 때 우리 사회의 변화도 시작될 것이다.

글. 류희정_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