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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항해] 자유를 향한 '대담한 항해'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18. 07:32

자유를 향한 ‘대담한 항해’
다큐멘터리 <대담한 항해>

작은 소녀의 작지 않은 꿈


로라 덱커 (Laura Dekker) 는 1995년 생으로 최연소 세계 일주 항해자이다. 탐험심 강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조선소에서 일하며 바다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심지어 그녀가 태어난 곳은 보트 위이다. 바다에서 보낸 생후 5년 간의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이라도 하듯 그녀는 다시 바다로 나가기를 갈망한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네덜란드의 평범한 일상은 보트를 타고 전 세계의 바다를 가로지르고픈 로라에게 따분하기만 하다.


이 대담한 포부를 고백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오래 항해했던 과거가 있던 아버지도 처음에는 반대했고, 그가 마음을 돌려 딸을 응원하기로 했을 땐 네덜란드 법원이 그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4살의 어린 나이의 소녀를 혼자 바다로 내보내는 것은 시민 및 아동 보호 차원에서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짧지 않은 싸움 끝에, 법원은 결국 부모에게 양육권을 완전히 양보하였고 그렇게 로라의 2년에 가까운 항해는 시작되었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자 이제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죠”


항해의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비록 영화의 앞부분에서 짧게 다뤄지지만, 그녀가 주변의 시선과 편견에 싸워가며 준비하던 오랜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항해를 시작할 때의 설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후 빠르게 다가오는 지겨움과 기쁨의 계속되는 롤러코스터. 하지만 유럽대륙을 지나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면서 로라는 그 누구보다 진지해진다. ‘태평양’이라는 커다란 바다로 나아가는 그 순간 그녀에게 앞으로 다가올 광활한 바다는 아마도 큰 두려움이자 설렘이었을 것이다.


오랜 항해를 거쳐 도착한 남태평양의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그녀는 ‘천국(Paradise)’ 이라고 묘사한다. 로라에게 유럽이 따분한 이유는 모두가 돈에 대해서, 특히 가족을 부양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이다.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러다가 죽는 삶과는 다른, 그곳만의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항해가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법.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더라면 호주와 남아프리카를 지나며 사나운 폭풍우와 싸우기도 하고, 40여일 간 바람이 불지 않아 바다 한복판에서 가만히 떠있기도 한다. 

하지만 로라는 언제 어디로 갈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항해에 완벽히 적응한다. 폭풍우를 즐기고 통제하는 자신의 집중력, 자연과 하나되는 일체감, 마음먹기에 따라 최악의 항해가 최고의 항해가 되는 순간들. 영화는 계속해서 그녀가 찍은 바다와 배 그리고 하늘을 보여주지만 한없이 푸른 빛의 단조로워 보이는 화면 속 그녀는 다양한 자아를 발견해낸다.

 

 


모든 여행에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떠나 호주로 가는 도중, 로라는 고향인 뉴질랜드에 들리지 못하고 지나친다. 아쉽지만 최연소 세계 일주 항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려할 수 없는 루트라며 자신을 토닥거리다 문득,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기록들, 사람들의 인정,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과 같은 것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오로지 하나의 이유만이 남게 된다—나는 바다가, 파도가, 항해하는 것이 좋다는 절대적인 사실. 처음엔 돈을 벌려고 항해 경주에 뛰어들었다가 바다가 좋아 경주를 그만두었다는 항해자와 같이, 그녀 또한 자기 스스로가 바다 위에 존재할 때 가장 자기다워짐을 느낀다.

긍정적이다 못해 낙천적이기까지 한 로라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녀를 구속하고 틀에 가두어 놓는 사람들이다.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법조인들, 가라앉고 말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사람들, 그리고 항해의 시작부터 따라다니며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를 로라는 극도로 싫어한다. 언론과 대중은 계속해서 로라에게서 대답을 원하는데, 사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로라는 줄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끝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어떻게 기록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 뉴질랜드를 그냥 지나쳐왔는데, 어떤 느낌이니? 기록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에게 중요하니?


그런 건 상관 없다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해보는 거라고. 바다가 좋다고 대답하며 잠시만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강경하게 쏘아 붙이는 로라에게 기자는 말한다.


“네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독립심이니? 그게 네가 목표로 하는 거야?”


스스로를 알아가는 나 자신과의 여행


항해를 마친 후 로라가 배운 것은 자유, 기쁨, 외로움, 고독함, 고요함과, 그녀가 그것들을 ‘바다에서’ 느낄 때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버텨낼 만큼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사용하는 언어 외에는 네덜란드에 특별한 애착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을 찾아가는 것. 스스로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여행은 누군가 내 삶에 정답을 내려주기만을 바라는 현대사회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더더욱 대담히 항해하라고 권하고 싶다.

 

글. 이승연_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