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운명입니까] 피해자에 대한 책망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20. 21:09

피해자를 보는 외부인의 시선 

<운명입니까>

장미

 

언니 라켈리는 가정 폭력으로 쉼터에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동생 드로어는 언니를 돕기 위해 같이 지내면서 라켈리의 일상을 필름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라켈리를 향한 드로어의 시선은 그리 상냥하지 않았다.



 

<운명입니까?> 스틸컷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울어?”

 

쉼터에 몇 달은 더 머물 수 있던 라켈리가 집에 돌아온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법이고, 집이 바로 라켈리가 있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이다. 드로어는 라켈리에게 오래간만에 집에 온 소감을 물었지만 라켈리는 와야 할 곳에 와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별 소감이 없었다.

 

집을 비운 동안 온갖 곳에 먼지가 쌓였다. 집은 청소가 필요했고, 빨랫감은 널려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드로어에게 라켈리는 지금 당장 자신이 집에서 할 일을 말했다.

 

다음 날 라켈리는 사회보장을 받으러 기관에 갔다. 남편은 감옥에 있고 자신은 쉼터에 있고 돈이 없는데 제도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언니가 제일 싫어”

 

드로어는 라켈리의 편지를 훔쳐봤다. 그리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진솔한 이야기를 할 것처럼 굴어놓고 남편에게 아이가 생겼으니 재결합하자는 라켈리의 편지 내용을 읽었다. 언니를 비난하려는 의도로. 둘에게 대화가 아닌 말싸움이 일어났다.

 

다음날 드로어는 라켈리에게 자신이 지나쳤다고 사과했다. 대화를 시작하려던 드로어에게 전화벨이 울리고 잠시 나갔다 온 사이 카메라는 라켈리의 손으로 옮겨갔다. 화를 내는 드로어에게 라켈리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드로어는 라켈리의 비참한 인생도 바보 같은 선택도 싫다고 했다. 자신은 뻔히 예상했던 일인데 왜 그랬으며 또 왜 그럴 거냐고 화를 낸다. 그렇게 당하고도 재결합하려는 라켈리가 드로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명입니까?> 스틸컷


 

피해자에게 당할 것이 분명한 게 눈에 보였는데 왜 당했냐고 묻는다. 또 당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구냐며 못마땅하게 여긴다. 잘못은 가해자가 했고 처벌도 가해자가 받는데 피해자에게 책망의 목소리가 떨어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피해자를 나무라는 걸까?

 

대개 폭력은 수평적 관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한쪽이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벌어진다. 그 폭력이 가정에서 발생한 경우엔 특히 더 외부에서 상황을 자세하게 알기 어렵다. 살을 맞대고 사는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얼굴 자주 보는 사이에서 파악하기는 어렵다. 외부인인 드로어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며 라켈리를 힐난한다. 남들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드로어는 라켈리 몸에 남은 상처 말고 또 무엇을 알고 있을까. 드로어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발언을 했을까. 라켈리가 남편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일은 과연 쉬웠을까. 판단할 수 있는 위치라는 오만한 착각이 잔인한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