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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안전한]여성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안전 영역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5. 9. 25. 16:58

여성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안전 영역

-<완전히 안전한>-


무스티


다양한 투쟁의 담론 속에서 소외되는 여성인권


  이 영화는 독일 난민캠프에서 난민을 위한 운동을 하는 도중에 발생한 데이트 강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난민캠프에서의 시위라는 것 자체가 많은 투쟁을 내포하고 있다. 인종의 문제, 독일인과 난민이라는 신분의 문제, 시위권의 문제 등등. 이처럼 다양한 거대 담론들 속에서 여성인권의 문제는 간과된다. 비단 이 난민캠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도가 밀려오는데 조개나 주울 수는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다양한 투쟁 담론 속에서 성폭력 문제는 소외되어 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든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안건이 남아있다든가 하는 의견들 속에서 성폭행이라는 범죄는 사소하고, 개인적이고, 덜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다.




<완전히 안전한> 스틸컷




피해자 보호인가, 마녀재판인가


  난민캠프 속에서 발생한 강간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캠프의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시작한다.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에 가해자는 불참하고, 피해자만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강간의 피해자가 된 사라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이 이따금씩 비춰질 뿐이다. 가해자가 난민이라 법정으로 가게 되면 추방당할 위험이 있으니 신고는 안 된다, 가해자가 흑인이라 문제를 삼는 것이니 이건 인종차별이다, 둘이 키스를 했으면 섹스도 허락한 것이 아니겠느냐, 단순한 문화 차이에서 발생한 오해일 것이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전혀 존중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이 회의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데이트 강간에서 피해자가 가장 고통 받는 것이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너도 좋아했으니까 섹스를 했고 그래서 강간이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키스를 한다가 어떻게 섹스를 한다로 이어지는지 그 사고 구조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데이트 강간 상황에서 여성은 상대방에서 호감이 있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강간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너도 좋았으니까 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임을 부인 당한다. 이 영화에서도 피해자인 사라는 네가 동의했으니까 남자가 몸 위에 올라탔다는 발언이나 키스를 했으면 사귀는 것이고 그럼 섹스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발언을 묵묵히 들어야 한다. 사라는 성폭력 범죄의 희생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심판당하는 피고인이 된다.



<완전히 안전한> 스틸컷



완전히 안전한 안전 영역의 실체


  난민들에게 난민캠프는 완전히 안전한 안전 영역(safe space)일 것이다. 캠프 안에서만큼은 보호받을 수 있고, 위협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안전한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상존한 공간이 된다. 영화의 제목인 '완전히 안전한(Safe Space)'은 이러한 역설을 담아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안전한 공간인가, 남성의 힘(force)에게만 안전 영역은 아닐까. 회의장 한 가운데에서 고개를 떨어트린 사라의 모습이 자꾸 맴돈다. 사라에게는 성폭력의 순간부터 그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까지 결코 안전하지 않았던 '완전히 안전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