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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뭔가를 건너왔다 <델마와 루이스>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6. 9. 29. 10:24


우리는 이미 뭔가를 건너왔다

페미니즘 로드무비 <델마와 루이스>


지혜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붉은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초록색 오픈카 한 대가 평원을 가로지른다. 카메라는 익스트림 롱쇼트로 자동차의 질주를 담아낸다. 오픈카에는 두 젊은 여성,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타고 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후 멕시코를 향해 도망가는 중이다. 사뭇 들뜬 그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동안, 경찰차 한 대가 화면에 잡힌다. 경찰차는 경적을 울리며 오픈카를 추격하고, 카메라는 두 여성의 당황한 표정을 다시 클로즈업한다. 시동을 끄고 정지한 자동차, 다가오는 경찰, 차에서 내리는 루이스, 상황을 지켜보는 델마. 이제 무슨 일이 생길까.

 잠시 후, 초록색 오픈카는 다시 평원을 질주한다. 어찌된 일인지, 경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델마와 루이스는 조금 전보다 더욱 상기된 표정이다. 그날 밤, 델마는 루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Something’s, like, crossed over in me and I can’t go back.)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궤도를 벗어나는 여성들

 우리의 삶에는 전환점이 존재한다. 전환점은 흔히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 또는 그런 고비’를 의미한다. 살다 보면 지금까지 달려오던 궤도를 이탈하거나 새로운 궤도에 진입할 때가 있다. 첫 남자친구이자 첫사랑이던 남편을 위해 일평생 순종적인 여자로 살아가던 델마는, 친구 루이스와의 휴가에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는 처음으로 총을 만지고, 일탈을 시도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루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델마에 비해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역시 레스토랑에서 접대를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며 타인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였다. 카메라는 이 두 여성의 변화를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의 모습과 함께 차분한 호흡으로 담아낸다. 벌써 세상에 나온 지 25년이 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 이야기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따라서 로드무비로서, 혹은 페미니즘 영화로서 이 영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리는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것의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여전히 건너오지 못한 것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올 한해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입소문을 탄 영화가 있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2016)다. 대놓고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손예진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나, 표백되지 않은 여자 중학생들의 모습에서 페미니즘적 가치를 짚어낸 관객이 많다. 손예진은 지난 6월 <비밀은 없다> 개봉 시점에 진행된 JTBC 뉴스룸인터뷰에서 “<델마와 루이스>처럼 여자들이 이끄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남성 위주의 영화가 많아서 여자 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적다”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한정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유명한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여성의 역할은 성녀와 창녀, ‘민폐’ 캐릭터, ‘못생긴’ 여자,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 중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남성 캐릭터의 보조적 역할을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판단하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 그랜드 캐니언을 가로지르는 델마와 루이스의 궤적은 25년이 지난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특별하다. 문제는 델마가 그리 비장하게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라고 말한 지가 언젠데, 많은 것들이 25년 동안 제자리라는 것.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흥행한 한국 영화 10편 중 ‘성평등 지수’를 측정하는 ‘백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겨우 두 작품에 불과했다.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는 영화는 정말 적고, 그중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더욱 드물다. 나 역시 2016년인 현재까지도 ‘페미니즘’과 ‘영화’를 연결지어 언급할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년)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년)를 참고자료로 가져오곤 한다. 그나마 최근의 대중적인 작품으로는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년 개봉) 정도가 있다만, 선택의 여지는 그리 풍부하지 않다. 올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가 여자 배우를 주연으로 앞세워 흥행하긴 했지만, 이마저도 ‘남성적 시선(male gaze)’으로 레즈비언을 그려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델마와 루이스>는 많은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귀중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귀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랜드캐니언을 향해 달린다

 어릴 적 <델마와 루이스>를 볼 때는 무례한 성희롱과 심한 장난을 일삼는 트럭 기사를 혼내는 델마와 루이스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왜일까, 근래 들어 다시 본 <델마와 루이스>는 내게 미묘한 슬픔을 주었다. 트럭이 폭발하며 매캐한 먹구름같은 연기가 그랜드 캐니언을 가득 덮고, 카메라는 그 광경을 익스트림 롱쇼트로 잡아낸다. 그 새카맣고 커다란 먹구름이 일종의 징후로 느껴졌다. 서부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진 델마와 루이스의 미래가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징후.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는 무장 군인들과 경찰차, 헬리콥터의 추격씬을 담아낸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의 나열이, 단순한 범죄물의 추격씬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점점 수가 많아지는 경찰차들을 보며, 여성이 가부장제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찾는 과정은 상상만큼 간단하거나 멋있지 않고, 저만큼이나 험난한 추격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기게 달라붙으며 성희롱을 멈추지 않는 트럭 기사처럼, 가부장제의 규범을 벗어나려는 여자들을 이 세상이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마의 대사는 내게 언제나 위안을 준다. 여성 인권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나아지는 광경은 보진 못했어도, 점진적인 변화는 지금도 목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백델 테스트’라는 개념이 고안된 것도, ‘여성인권영화제’가 생겨난 것도, ‘국민 대표 여자 배우’ 손예진이 <델마와 루이스>를 찍고 싶은 영화의 표본으로 꼽는 것도 일종의 변화가 아닐까? 우리는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 


 무장 군인들과 경찰차, 헬리콥터의 추격을 뒤로 하고 그랜드캐니언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향하는 두 여성의 마지막 대사에서, 나는 묵묵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계속 가자!”

(Keep Going,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