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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발견: 가족의 유일한 조건은, 조건 없음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6. 10. 5. 11:31

가족의 재발견: 가족의 유일한 조건은, 조건 없음

동성결혼 법제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

 

경은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는 판자로 만들어진 세트와 귀여운 장난감들로 시작되고,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소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유치하게 웬 인형극일까 하며 들여다보면, 영화는 뜨거웠던 동성 결혼 법제화 운동의 과정을 안고 있다. 프랑스의 동성 결혼 법제화를 배경으로 한 <사회학자와 곰돌이>를 통해, 사회학자 이렌 테리에게서 전혀 새로운 결혼과 가족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제 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사회학자와 곰돌이> 스틸컷



결혼은 계속 변한단다

 

조상들의 결혼도 오늘날의 결혼과 똑같았을까? 사회학자 테리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가장한 역사 속 결혼의 단면들을 들려준다. 혼외 임신으로 고통받았던 증조할머니, 결혼을 통해 사회에 통합되고 불명예스러운 출생을 극복한 할머니,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자기 일을 포기하고 가사에 전념했던 어머니, 그리고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실용적인 이유를 위해 결혼한 자신의 이야기까지. 결혼의 이해관계와 의미는 계속해서 변해왔고, 여전히 변하고 있다.

 

결혼의 모습과 의미가 변한 것은 가족의 변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예전부터 결혼은 가족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여겨졌다. 사회학자 테리의 증조할머니가 혼외자식을 임신했다고 쫓겨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진짜가족을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렌 테리는 더는 가족이 결혼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성 커플들은 결혼이 법제화되기 이전부터 공동체를 이루거나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동성 결혼 법제화는, 이들이 더 이상 부모가 되고 가족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무엇이 가족인가요?”

 

역사 속에서 가족의 형태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고대 사회에서는 모계 중심의 가족을 이루었고, 이후 부계 중심의 부족사회에서 대가족으로, 그리고 근대의 핵가족으로 변해온 것이다. 근대사회에서야 등장한 핵가족은, 단일한 가족의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정상 가족이라는 틀은 그 외 다른 형태의 가족들에게는 억압이 되어왔다. 결혼의 의미를 다시 성찰해야 하듯 가족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가족이라고 여겨졌던 핵가족의 형태 역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제 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사회학자와 곰돌이> 스틸컷



미혼이 아닌, 비혼 1인 가구의 증가, 이혼율의 증가 등은 가족이 기존의 정상 가족의 신화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패치워크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핵가족으로 상징되는 정상 가족의 혈연과 부계 중심을 탈피하여, 각각 다른 천을 붙여 만든 조각보처럼 타인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나타난 안토니아의 공동체도 패치워크 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는, 가족의 정의와 조건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도 동성 결혼 법제화, 비혼 가구, 이혼, 그리고 패치워크 가족의 형성이 결혼과 가족을 파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어려운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치열했던 싸움은 결국 승리한다.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법안 통과 후 사람들이 보여주는 환호는, 힘들게 싸워왔던 순간들만큼 강렬하다. 법안 통과 직후 사람들이 외치는 평등!”이라는 구호는, 평등이 그렇게 뜨거운 단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너무나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뜨거움만은 자막 없이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동성 결혼은 허용되었지만, 사회에 뿌리박힌 동성애 혐오는 계속해서 힘든 순간들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 또한 법제화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그 제도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준 뜨거운 싸움은, 한 번도 되짚어보지 않았던 진짜가족의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에서, 가족의 의미를 재조명할 기회를 준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정상 가족의 신화에서 물러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신화에는 쓰이지 않았던 다양한 가족들을 발굴해낸다. 익숙한 세계를 깨트리는 것은 치열한 고민과 고통을 수반한다. 곰돌이들과 사회학자 테리가 그 과정 속의 당신을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