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나 불인정이 아닌,
대안적 가족문화 공론화의 시작
- 프랑스의 동성 결혼 법제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회학자와 곰돌이>
김순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사회학자와 곰돌이> 스틸컷
<사회학자와 곰돌이>는 결혼과 친족체계가 어떻게 시대에 따라서 달라져 왔는지를 통해서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있고, 우리의 생각 또한 어제의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프랑스에서 동성결혼이 통과되는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이성애 결혼만이 정상이었던 할머니 세대를 거쳐서, 결혼 외에 아이를 낳으면 사회로부터 배제되었던 시대들을 거쳐서 오늘날 동성결혼이 남성과 여성의 결혼만이 정상이라는 규범을 질문하는 또 다른 시대를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결혼제도는 안정적이고 고정화된 가치를 통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둘러싼 가치는 시대마다 언제나 해체되었고 또 다른 의미로 재구성됐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결국,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결혼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신화는 다양한 가족들의 삶을 비밀로 묻어두거나, 배제하였고, 현재 그러한 시대를 지나서 서구에서는 동거의 보편화, 싱글맘의 증가, 이성애 규범적인 가부장적 결혼제도의 변화 속에서 더는 ‘당연한’ 사회적인 가치가 아님을 보여준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사회학자와 곰돌이> 스틸컷
이성애 결혼/가족 규범을 둘러싼 저항은 정치적
현재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는 프랑스, 영국, 미국, 스웨덴, 스페인 등 19개 국가이며, 결혼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결합을 인정하는 시민결합이 시행되는 나라는 16개국이다. 동성결혼에 대한 공론화는 이성애와 동일한 권리의 획득이라는 혹은 이성애와 동일하게 ‘사랑할 권리’라는 의미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이 가능한 ‘동일한’ 고정적인 이성애 규범적인 결혼, 가족제도는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랑의 방식 또한 언제나 사회적으로 구성되어왔고, 변화되어 왔음을 공론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현재 이성애자라면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결혼을 중심으로 한 가족 형태가 역사적으로 백인 부르주아 계급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고, 흑인과 백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던 시대를 지나 탄생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생물학적'인 남자, 여자만이 결혼이 가능하다는 결혼제도는 모든 문화마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성과 여성 간의 '여성결혼'이 가능한 누에르족에서의 삶들은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결혼관계 내부에서도 여성의 삶이 전업주부로 국한되는 것에 저항한 68혁명에서의 여성들의 ‘거친’ 투쟁의 역사가 오늘날 성평등한 결혼관계의 가능성을 형성해온 중요한 발자취임을 영화는 드러내고자 한다. 이렇듯, 결혼제도를 흔들고, 가족관계의 다양성을 만들어 온 마이너리티의 삶들은 국가가 규정하는 이상적인 개인, 관계, 시민권에 개입해온 역사와 연결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성애 규범적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한 역사는 1930년대 부모의 강제결혼에 저항했던 시기, '여자도 남자와 같이 되라'라는 신여성들의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강력했던 시대뿐만 아니라 이성애 내부에서도 동성동본 결혼을 금지했던 시기 등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인 상황을 통해서 재구성됐다. 최근, 한국 사회는 동거에 대한 사회적인 불인정, 이성애 내부에서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여전히 ‘문제화’할 뿐만 아니라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혹은 혐오하는 집단의 활동들을 거세게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그대로 ‘이성애 결혼/가족 규범을 둘러싼 저항이 정치적’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사회학자와 곰돌이> 스틸컷
이렇듯, 결혼, 가족제도의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는 동성결혼에 대한 인정이냐 불인정이냐는 구도 속에서 제도로의 ‘진입’을 통한 평등권의 논의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더 주요하게는,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삶을 정상화하는 젠더규범을 비틀고, ‘정상적인’ 시민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고, 규율화 할 수 있다는 규범에 개입하는, 그러한 규범을 공론화하는, 그러한 규범에 말을 거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자와 곰돌이’ 영화가 프랑스 동성결혼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젠더규범, 사회적인 불평등, 재생산의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가족을 정치화할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이나 대안적인 가족문화, 관계문화를 공론화할 수 있는 만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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