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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혼란, 낯선 감정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9. 20:56


익숙한 혼란, 낯선 감정


- 가정폭력을 벗어나는 용감한 세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닫힌 문 뒤에는>


 


허민숙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가정폭력이 크게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 그 이유, 혹은 가정폭력이 심각한 문제라 여기는 그 이유에는 공통적인 게 있다. 바로 친밀성이다. 친하다는 것, 많은 것을 공유하는 관계라는 것. 바로 그 동일한 이유로, 둘 사이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또는 정말 누구도 견뎌서는 안 되는 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 중 어느 하나를 견지하는 것은 가능할까? 올바름의 차원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말이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처참한 피해를 당하고도 그의 좋은 면이 생각이 난다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에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혹은 느껴야 하는가? “저 지경이 되고도 좋다고 하니 이제 말릴 재간이 없다고 해야 하는가? “저 여성을 저렇게까지 만든, 바로 그것이 폭력의 효과다라며 분개해야 하는가?

 

모두가 다 이해가 간다.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라며 눈을 부릅뜨고 위협하는 가해자의 그 태도도, “내가 때린 게 아니라 다른 데서 맞고 들어온 것이라며 발뺌하는 또 다른 가해자의 뻔뻔함도 다 이해가 간다. 그간 여성들이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감내해왔고, 남성들의 거짓말에 동조해 왔었으니까. ‘그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짓는피해자도, ‘그가 진짜 반성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와의 재결합을 생각하는피해자도 다 이해가 간다. 누구의 연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로 여성을 평가하고, 또 그것으로 여성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었으니까.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닫힌 문 뒤에는> 스틸컷

 


폭력의 가장 중심에는 통제가 있다


자신을 죽음의 위협으로 몰고 간 그 가해자를 두둔하고 마음 아파하는 피해자, 마치 다시없을 원수에게 하듯 무자비한 폭력을 자신의 연인에게 행사하고도 분에 못 이겨 하는 가해자만큼이나 지켜보는 자들도 혼란스럽다. 이 혼란함과 헷갈림 속에서 어떤 감정선을 따라야 하는 걸까. 그 일을 겪고도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는 피해자가 있고, 보석 기간 동안 가해자와 별다른 동요 없이 만나고 식사를 한 피해자도 있다. 이 모든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구를 원망할까?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눈치채셨는가? 피해자의 동선을 따라왔다는 것을, 피해자를 주시해 왔다는 걸 말이다. 피해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피해자의 현 모습을 통해 피해사실이 내게 전달되는지, 그래서 가여운지, 아니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지를 말이다. 엄청난 피해사실에 피해자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가해자를 만나는 피해자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법정에서 가해자를 마주하고 난 후, 거리에 쓰러지듯 울고 있는 피해자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피해자를 우리의 방식대로 통제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폭력의 가장 중심에는 통제가 있다. 통제는 기본적으로 무섭고 위협적인 방식으로 공포심을 조장하지만, 때로는 처연한 슬픔과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가해자들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울면서 처절하게 매달리는 것,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 고개를 떨구는 그 모든 것은, 그러나 믿기 어렵겠지만, 그것마저 통제 행위이다. 통제의 목적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는 것, 자신의 계획대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우리는 어떤 행위뿐 아니라, 행위를 통해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피해자의 반응을 살피며, 피해자를 주시하느라 어쩌면 가해자를 너무 단순화해왔는지 모른다. 도가 지나친 폭력성만을 비난하며 그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그쳐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너무 폭력적이어서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입는 그 이유는 폭력적인 누군가의 곁에 머물러서가 아니다. 피해자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취약하지 않은 상대, 자신이 제압할 수 없는 상대, 그리고 폭력을 일으켰을 때 상당한 사회적 물의가 예상되는 상대에게는 손쉽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우스울 정도의 가벼운 처벌 내지는 묵인, 가해자의 창창한앞날을 걱정하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바로 그 문화적 배경, 그를 등에 업은 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재생산해내는 사법 시스템 속에서 피해자는 취약해진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닫힌 문 뒤에는> 스틸컷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그 자체가 폭력


피해자에게 집중하는 것은 필요하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그 자체가 폭력이기에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주의 깊게 살피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여야 할까를 질문한다. 닫힌 문 뒤에는(Behind Closed Doors)혼란해 하는 피해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지켜보며 깊게 공감하지만, 때로 이해하기 어렵고, 답답해지는 감정들이 낯설게,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고립을 다시 생각해본다. 가해자들이 일관되게 사용하는 고립이라는 전략, 다른 친밀한 관계를 서서히, 그러나 모조리 끊어내어 결국 피해자 홀로 모든 폭력을 감당하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통제 전략. 피해자를 지켜보며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어휴, 답답하다 정말이라는 우리의 안타까움에 가까운 탄식은 사실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고립을 만들어 내는 일일 수 있다. 피해자라면 응당히 보여야 할 행동을 우리가 또다시 규정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닫힌 문 뒤에서여전히 서성이고 망설이는 피해자가 마땅치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의에 찬 일회적 행동이 아니라는 것, 바로 그 친밀성때문에 복잡한 감정때문에 그러기 힘들다는 것, 하지만 떠나기 위한 과정을 힘겹게 내디디고 있다는 것, 최종적으로 떠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피해 여성의 얘기를 자세히 들으면 들을수록, 그 경험에 깊이 들어갈수록 어쩌면 더한 당혹감과 어찌할 바 모르겠는 낯선 감정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이상한 피해자를 만나서가 아니다. 아직, 그 일이 무슨 일인지를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들어야 할, 밝혀야 할 많은 얘기가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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