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흔들리지 않지'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피움톡톡

낡은 관습을 거부하는 단순한 지혜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6. 10. 15. 04:19

낡은 관습을 거부하는 단순한 지혜

그녀들의 특별한 계보, <안토니아스 라인>


지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10.14(금) 여성인권영화제 10회를 기념해 마련된 <피움 줌인, 단순한 지혜> 섹션의 <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이 상영됐다. 여성폭력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2016년, 페미니즘 ‘고전 영화’가 전하는 단순한 지혜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다른 공동체’를 꿈꾸는 그대에게

가정과 일터,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연을 맺는 이 공동체에서 과연 여성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가정은 ‘쉼’이 아닌 끊임없는 ‘가사와 양육’의 공간이고, 때로는 무수히 많은 폭력이 감춰지는 곳이다. 일터에서는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다. 일상의 곳곳에서 ‘여성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지친 그녀들에게,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은 '단순한 취향' 이상의 바람이다.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서사를 다룬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여성들이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대담하게 그려낸다. 안토니아는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을 바라며 청혼하는 바스에게, 아들도, 남편도 필요하지 않지만, 종종 들러 일을 돕고, 식사를 함께하는 관계를 제안한다. “아기는 갖고 싶지만, 남편은 원하지 않는” 다니엘은 도시에 나가 정말 ‘아기의 씨앗’만을 얻어오고, 자신이 첫눈에 반한 여성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눈다. 다니엘의 딸 테레사도 딸 사라를 낳지만, 모두가 양육을 책임지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사라가 증조할머니인 안토니아와 여러 차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아직 어린 그녀 또한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연령은 ‘다름’의 조건이지만 차별의 원인이 되거나, 종속적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고요한 마을의 풍경 속에서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파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겉은 화려하지만, 내부는 여전히 낡은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가 떠오르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속 여성공동체의 존재는 고무적이지만,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보는듯한 막연함도 자리한다.


2016년, 다시 ‘안토니아스 라인’을 위하여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민아 영화평론가가 출연하고, 남은주 한겨레 기자가 진행하는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유지나 교수는 안토니아가 어머니의 임종 후에 걸어온 행보에 주목하며,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계보를 끝내고, 안토니아를 시작으로 새로운 계보를 만드는 것”이라 평했다. 영화 속 안토니아의 계보는 혈연중심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 나온 이들과 안토니아 모녀가 직접 구한 이들로 자연스레 구성된다. 정민아 평론가는 “혈연이 아닌, 연대와 자연을 중심으로 한 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핍박받는 자들을 포용하는 넓은 대지이면서 스스로 씨를 뿌리는 주체적인 여성공동체가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설명했다. 한 관객은 “정상성이란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정을 꾸리는 안토니아의 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출산은 여성이 하지만, 어머니의 이름은 계보에서 지워져있다”는 <맨스플레인>의 지적을 인용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공동체를 호평하기도 했다.


“이 긴 세월 동안의 경험으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영화의 맺음말은 여전히 억압적인 현재를 살아가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여성들을 향하는 듯하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안토니아의 계보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영화 속 공동체도 단순히 유토피아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낡은 관습을 버리고 다른 사회를 만들어가는 상상력의 씨앗, 그것이 <피움 줌인>을 통해 찾고자 했던 단순한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