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침묵과 외침을 반복하며 산다. 누군가의 외침에는 침묵하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은 커다랗게 외친다. 사회는 그 중 어느 정도의 균형을 오가며 돌아간다. 그러나 때론 그 사회가 치우칠 때가 있다. 아주 교묘하게도 누군가의 외침에 지독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여성의 외침이 그렇다. 지독하게 고독하다. 나는 적어도 20년 넘게 이것을 목격해 온 증인이다.
폭력과 강간, 살해와 같은 가시적 위협부터 유리 천장이나 임금 격차, 취업 장벽이라는 비가시적 위협은20년이 흐르기 전과 후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지하철역 출구에서 들려온 여성들의 외침과 <82년생 김지영>에서 드러난 외침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외침, 그러니까 당신이 듣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외침이다. 영화 <시체가 된 여자들>과 <여성 해방으로 좌회전>은 이것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이 외침이 궁금하다면 두 영화를 택하는 것을 권한다.
우리는 죽는 여성들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영화 <시체가 된 여자들>은 이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체들은 다양하다. 물에 떠 있기도 하고, 절벽에서 굴려지기도 한다. 피를 흘리기도, 깨끗하기도 하며 눈을 감거나 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다양한 시체들의 자리에 여성이 누워 있는 것은 늘 똑같을 뿐이다.
그러나 이 죽은 여성들의 외침을 듣는 것에는 얼마나 서툰가? 마시 코디. 수잔 허돕. 비트 노리. 웬디 라거매니저. 스티넘 마리아 컬린치. 마시 코디. 이 외에도 적지 못한 수많은 이름이 있다. 모두 영화 <시체가 된 여자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해도 당신은 알 수가 없다. 당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이 여성의 입에서 나온 종잇조각에 쓰인 알파벳 ‘H’라든지, 허벅지에 난 상처가 몇 센티미터인지 같은 것들이다. 시체를 연기한 한 여성은 한 번도 전체 시나리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죽음 외의 서사가 없는 것이다. 죽어가기 전까지 분명히 외쳤을 메시지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의 죽음에 ‘익숙’하다.
다행인 것은 이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점이다. 영화 <시체가 된 여자들>이 관객에게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면, 영화 <여성해방으로 좌회전>은 따뜻한 위안을 건넨다. 이 영화는 미국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건물을 점거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1965년까지 보스턴은 여성들이 기숙사 공용 공간에서까지도 바지를 입을 수 없고,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조차 '가정을 꾸리라'는 이야기를 듣는 곳이었다. 그렇게 여성들은 가정을 꾸리거나, 같은 회사에 들어가도 남성의 조수나 보조가 되어서 보스턴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남성들은 자신들이 계속 시위할 수 있도록 여성들의 일에 기댔다. 보스턴 여성들은 영광을 뺏기는 것에 분노했다. 그리고 하버드의 888 메모리얼가 8번지는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유일한 공간이 된다.
‘피움톡톡’은 여성인권영화제가 자랑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영화와
관련된 주제를 심도 있게 파헤쳐 보는 토크쇼입니다.
9/23(토) 18:20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ART3관에서 본 영화들이 상영된 후
김꽃비 배우, 정민아 영화평론가, 홍재희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리뷰 작성 : 예원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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