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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18. 18:59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 프리뷰


영화관 좌석에 앉아 객석의 조명이 꺼지면, 눈앞의 거대한 스크린은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지나고 나면팝콘이 흩어진 상영관을 걸어 나오며 때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영화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지만나에게는 기한 없이 견뎌야 할 지지부진한 일상이 남아있기때문이다그리 아름답지도그렇다고 대단히 비극적이지도않은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주제에 불안정하기까지 한 노동도 해야 한다.

아래의 두 영화는 바로 그 지점영화가 끝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삶과그 지루한 삶의 근간이 되는 노동을 다룬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오늘의 자리(위)>, <가현이들(아래)> 스틸컷



 

6,500원으로환산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나의 1시간을 위한 싸움, <가현이들>


2013년 여름, ‘알바들의인권을 지켜달라’,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출범했던 알바노조를 알고 있는 이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가현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다른 이유로다른 직종의 알바 인생을살아오던 세 명의 가현이들이 알바노조 결성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이야기를 그린다.

가현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밖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면서도 시급 6,500원짜리 알바를 구해야 하고친절하신 사장님께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들어야 하고, 3달도 안되어 바뀐 새로운 일터에 적응해야 한다가현이들은 생활 반경도꿈꾸는미래도 다르지만 어쨌든 당장 눈 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현이들은 싸우고연대하고목소리를 낸다한 시간에 몇 천원 더 달라고집세 내고 공과금 낸 다음에 고기 한 번 사 먹어 보자는 참 소박한 구호를 외치는데도 정신머리가 썩었다’ 부터 ‘지옥불에떨어져라까지 온갖 반대에 마주쳐야 하지만매 시간의 노동으로지속되는 지루한 매일이지만가현이들은 그래도 아름다워야하기에’ 싸운다고 말한다어쩌면 영화가 끝난 후 우리의일상도싸워서 아름다움을 쟁취할 가치가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스틸컷



대체재로서의 삶, <오늘의 자리>


지원의 삶은 얼핏가현이들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기간제 교사로 남의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 소리를 들어가며 일하고몇 달 지나면 빼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사무실의 내 자리가 있는 삶이다심지어 여자에게’ 그렇게도좋다는 교사 자리가 아닌가하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가 다가오면,또 다른 땜빵자리와 임용고시그리고 그 외의 온갖 문제들 사이에서 지원의 삶은 지루한 뺑뺑이를 시작한다.

영화는 흔히 교사직이 여자에게 좋다고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남긴다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자에게 좋은 직장은 무엇을 일컫는가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신출산,육아간병 등에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업은 결국 여성이기에 가부장제에서 요구받는역할을 쉽게 수행할 수 있게 만든다그리고 가부장제에 복무하러 떠난 여성들의 자리를 맴도는수많은 지원이들을낳을 뿐이다.

내 자리가 아닌 오늘의 자리를 찾아 말 그대로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생활은 지원에게자유가 아닌 답답함만을 안겨준다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학교에서도 유목민으로 사는 방법은 알려준 적이없는데우리는 대체재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까?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스틸컷


영화가 끝나도 지속될 이야기들


<가현이들> <오늘의 자리>는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떠나 후련하게잊어버릴 수 있는 영화들은 아니다. <가현이들>의가현이들은 오늘도 스스로가 믿는 바를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고, <오늘의 자리>의 지원은 무슨 수로든 삶을 꾸려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참 별 것 아닌 공통점이 관객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꽤 질긴 유대감을 만들어낸다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누군가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든, ‘비정규직이란 이름 아래 끝도 없이 떠도는 유목민 생활을 하든 우리는 가현이와 지원이를 언제 어디에서 한 번쯤은 마주칠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