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뉴스

고통을 힘으로, 우리 함께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4. 00:01

고통을 힘으로, 우리 함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피움톡톡

린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시티 오브 조이> 상영 후 영화 주제에 관련된 게스트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는가’를 주제로,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의 서경남 시설장과 아내폭력 피해 생존자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에스더, 붉은노을이 함께했다.

  


더 ‘행복한 삶’을

<시티 오브 조이>는 콩고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은 생존자들의 쉼터이자, 그들을 공동체의 리더로서 양성하는 기관인 ‘시티 오브 조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인 ‘수동적이고 약한’ 모습 대신,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풀어가며 살아가는 생존자들을 비춘다. 센터의 이름이 ‘시티 오브 조이’인 것도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생존자들이 센터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경험을 나누고 연대하며, 자신의 ‘보지’를 그리고 자기방어 교육을 받는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럼으로써 여성들은 콩고 안에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맞닥뜨릴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대처하게끔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다. 

 

잔인한 현실, 그 너머로 나아가기

영화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때때로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난 후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매 말을 잇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이 보였다. 서경남 시설장은 “처음 볼 땐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고, 다 보고 잘 때는 계속 악몽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에스더는 “저도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영화를 보면서 고통이 그냥 치유되지 않는 상태로 남는다면 고통으로만 남는데, 저런 공동체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치유되면 힘으로 바뀌고, 여성들이 리더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걸 보면서 제가 쉼터에서 겪은 경험도 인생을 바꾸고 힘을 얻을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잊히는 가운데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밝게 다가와 영화가 힘 있게 느껴졌다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공동체에서의 치유, 그리고 그 이후의 삶

서경남 시설장은 콩고의 ‘시티 오브 조이’가 한국의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하면서, 붉은노을과 에스더에게 쉼터에서의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질문했다. 붉은노을은 “쉼터에 가기 전까지는 남편이 제가 잘못해서 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다”며 쉼터서 처음 들은 말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었고, 그때부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전에는 저 자신이 종이인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던 모습에서 쉼터의 경험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에스더는 “사람들이 고통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고통을 담아 두다 보니 곪아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며 영화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처럼 고통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서경남 시설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시티 오브 조이’ 졸업생들도 센터에서 나간 이후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며 ‘쉼터 이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붉은노을은 “이혼한 후 3년 동안은 계속 걱정하면서 지냈는데 그런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이들과 저 모두 안정을 찾고 자기 삶을 실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더는 “얼마 전에 둘째 아이가 친구들에게 배려를 잘 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학교 선생님께 들었다”며 쉼터에 있었던 경험이 아이에게 나빴을 거라는 생각만 했는데, 사람에 대해 더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어 좋은 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처음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털어놓을 때 눈물을 보이던 것과 달리 더 안정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시티 오브 조이’에서 여성들은 서로의 경험에 귀를 기울인다. 늘 숨겨야만 했던 감정들을 드러내며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여성들은 피해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성폭력 피해는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이 피해자의 삶을 침묵 속에 가둘 수는 없다. 삶은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며 여성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피해자의 삶은 <시티 오브 조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에스더와 붉은노을이 그랬듯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수많은 여성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