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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에 남겨진 것들

한국여성의전화 2017. 9. 24. 00:12

이혼 후에 남겨진 것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평범한 커플들> 피움톡톡

경은 여성인권영화제 기자단

9월 23일 오후, CGV 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제 11회 여성인권영화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영화 <평범한 커플들>이 상영되었다. 영화 상영 후에는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의 진행으로 피움톡톡이 이어졌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혼 후의 삶을 그려낸 영화 <평범한 커플들>을 바탕으로, 이혼이 낙인이 되는 사회 속에서 이혼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영화가 보여준 이혼 후 여전히 지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이었다. 게스트로는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와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함께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쯤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영화 <평범한 커플들>에는 이혼한 네 커플이 등장한다. 각 커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혼한 커플들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이혼 사실에 상처받고 헤어지기 싫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이혼한 당사자들도 이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혼을 한 사람들이라고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혼을 해놓고도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상처가 될 때 이혼이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차차 적응해간다. 그러면서 이혼했다고 해서 관계가 단절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한 파트너가 현재 이룬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낸다든가, 이혼한 커플이 각각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가족을 이룬 다음에도 만나서 각자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장면들은, 끊어진 이전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들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헤어진 후에도 이전 관계를 바탕으로 새롭고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 속의 모두가 깨져버린 관계로부터 갖게 된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정상가족’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피움톡톡이 시작되었다. 진행자와 두 게스트 모두 이혼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족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지적했다. 관객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이혼은 여전히 두려운 문제이고,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보여주는 이혼 후의 삶이 한국에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갔다오는 게 안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며 결혼하는 친구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질문들은 역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잘 드러내는 듯 하다.


이에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들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을 남자들의 태도를 들어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여성에게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대리 효도라는 억압을 강요하는 일종의 계약으로 자리해왔다. 이제 그러한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은, 이혼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말했다. 또한, 결혼을 강요하고 이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말들 모두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왜 우리는 하나의 정상가족만을 추구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핀란드의 과거 사회경제적 상황이 한국과 비슷했지만 현재의 제도가 달라진 것을 설명하면서, 제도와 풍습은 우리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가 꼭 필요한가, 왜 이혼한 여성들은 재혼을 하면서 관계에 의존할까 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유지나 영화평론가는,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다 재혼을 한 것은 아니고, 이혼을 함으로써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혼자든 함께하든 이런저런 삶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답변했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롭다”며 관계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고, 부부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이 관계에 의존하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젠더화된 사회구조에서 여성은 ‘보조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배우게 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여성은, 이라는 질문보다는, 자아를 맨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젠더가 누구이며,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이혼 당사자 모임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당시 모임에서 내세웠던 캐치 프레이즈 중 하나가 “이혼 자녀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다”였다고 말했다. 즉, 반드시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 과정을 겪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평범한 커플들>이 주는 메시지는, 관계를 어떻게 겪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피움톡톡이 끝났다.


관계 속의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결혼과 이혼이 모두를 옥죄는 사회에서 관계 속의 모두가 행복할 리 없다. 영화 <평범한 커플들>은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이혼이 특별할 것도 없고, 평범한 커플들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해준다. 영화는, 가족을 유지함으로써만 행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영화는 이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준 가능성은 다른 관계들에 대한 고민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도, 관계 맺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별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영화 <평범한 커플들>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