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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이유> 피움톡톡 현장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4. 01:00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들, 정의롭지 못한 사법 현실

-  <살아남은 이유> 피움톡톡 현장 -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은


9월 13일,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인 <살아남은 이유>의 피움톡톡이 진행되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이하 고 대표)가 진행한 이 날 행사의 주제는 ‘인권보호보다 ‘가정보호’가 우선인 가정법원 파헤치기’였다. 출연자로 함께 한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이하 김 변호사)는 직접 겪은 실제 판례들을 덧붙이며 본 행사를 더욱 풍부하게 꾸며주었다.

다큐멘터리 <살아남은 이유>에 등장하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은 그들이 겪은 미국의 성 편향적 사법제도를 폭로한다. 미국의 법원은 ’가정폭력을 주장하는 여성’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를 주장하는 남성’ 사이에서 양육권 분쟁이 생기면, 대부분 학대하는 아버지의 손을 들어준다. 피해자의 심정이나 트라우마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비논리적이고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판이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의 남성적인 시각에 따라 가해자를 두둔하는 가정법원의 법체계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을 절대 보호하지 못한다.

 <살아남은 이유>의 상영이 끝나고 피움톡톡이 시작되었다. 현장은 너무도 참담한 사법 현실에 대한 토로로 가득 찼다. “참 답답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김 변호사는 <살아남은 이유>를 통해 세계 모든 여성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관객들 역시 각자가 경험했던 가정폭력과 관련된 문제들을 진솔하게 나누었다. 그중 한 관객은 “지난 몇 년 동안 인권영화를 봤는데, 오늘 본 이 영화가 가장 충격적이었다”며, 많은 여성들이 힘을 합해야만 이런 힘겨운 싸움들에서 이길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가정폭력은 ‘사소한’ 문제?

고 대표는 <살아남은 이유>의 대사처럼, 가정폭력은 절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강조하였다.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로 여기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묵인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팽배하다. ‘집안 문제는 집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가정폭력 피해를 밝히는 것은 가정을 깨는 파렴치한 짓이다’ 등의 편견 속에서 가정폭력은 항상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된다. 이로 인해 실제로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신고를 망설인다고 한다.

  또한 고 대표는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 강압적 통제 등도 가정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실제로 물리적 폭력처럼 언어폭력도 사람을 망가뜨리고 무력화시킨다고 덧붙였다. 언어적 폭력은 사회적으로 여전히 사소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언어폭력은 그 자체로도 매우 심각한 폭력일뿐더러, 또 다른 종류의 폭력으로 향하는 전 단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주목이 필요하다.



인권보다 ‘가정보호’가 우선?

 가정폭력을 사소한 일로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만큼 심각한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성 편향적이고 불합리한 사법 제도이다. 우리나라 가정폭력 처벌법의 목적조항에는 ‘가정보호’가 목적임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목적조항이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 등의 문제로 ‘깨져야만 하는’ 가정조차 무조건 법적으로 유지할 명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이 목적조항을 근거로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대면하여 면접이나 상담을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을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남발되는 임시 방편들 속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된다. 가정을 유지하게 만들려는 사법 절차들은 긴 시간 동안 지난하게 이어지며 가정폭력 생존자들을 지치게 하고, 심지어는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정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중이더라도, 자녀면접교섭권 행사나 부부 상담을 구실로 ‘적법하게’ 접근한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김 변호사 역시 가정 유지의 전제조건은 개인의 권리이자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이러한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정폭력 처벌법의 목적조항 개정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고 대표는 피움톡톡을 마치며 가정폭력을 근절하고 여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 제도의 개선이 꼭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이는 <살아남은 이유>의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가정폭력 생존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다.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들을 불합리하게 바라보는 사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