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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기혼>과 <루나디가스>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3. 18:20

그들이 없으니, 더 잘 먹고 잘 산다

<위장기혼>과 <루나디가스>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리사


“남편과 아내는 법적으로 한 사람이다. 아내의 법적인 권리는 결혼과 동시에 중지되는 것이고 남편에게 통합된다. 따라서 아내가 다치면 남편의 동의 없이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

  1765년 영국의 한 저명한 판사에 의해 쓰인 법학 교과서 중 한 부분이다. 아주 오래전 기혼 여성은 남성 배우자에게 귀속된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법은 남편이 자신의 재산(즉, 아내)을 도둑질(즉, 강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오랜 투쟁 끝에 여성이 투표권과 재산권을 얻고,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을 지나,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했다. 한국 또한 2013년 대법원이 종전 판례를 뒤집고 결혼 관계에서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법률상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고, 실제 배우자에 의한 성폭력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현실이다. 영화 <위장기혼>은 한국과 같이 배우자 관계 내의 성폭력이 처벌받기 어려운 인도에서 한 여성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구해내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 <위장기혼> 中

  스미타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한다. 하지만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것부터 집을 계약하는 것, 가스비를 내는 것까지 모두 남편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위장 기혼'이라는 기지를 발휘해 차근차근 혼자 일어설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법이 구해주지 않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해냈고 앞으로도 온전히 혼자 힘으로 꿋꿋이 생존해나갈 것이다.

 


영화 <루나디가스> 中


 "정말 혼자 살 수 있을까?"


비혼과 비출산을 아무리 확고하게 결심했을지언정 간혹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스미타처럼 난관에 부딪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아마 내가 이 집안의 첫 비혼 비출산 여성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중년 여성의 삶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내 집 마련이나 재테크 등의 정보들은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정상가족을 꾸릴 것이라는 전제에 맞춰져 있다. 대학교수는 강의실에서 여대생들이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 시집을 잘 가야 하니까 교직 이수도 권한다. 엄마됨이 당연한 본분이며 본능이고 목표인 것처럼 말을 얹는다. 이쯤 되니 축 처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루나디가스>의 주인공이자 감독, 작가 니콜레타와 마릴리사

   

  <루나디가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본분, 본능, 목표인 엄마됨을 거부하고 비출산을 선택한 여성들이 만든 영화다. 니콜레타와 마릴리사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여성이자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이다. 두 사람은 1991년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사르데냐에서 처음 만나 동료가 되었다. 2017년 프랑스 인구 통계학 연구소는 1968년생의 유럽 여성 중 아이를 갖지 않은 비율("Childfree Women")은 평균 15%라고 발표했고, 그중 이탈리아는 20%로 독일,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Childfree Women"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니콜레타와 마릴리사는 이 15퍼센트의 여성들을 비롯한 자신들을 '루나디가스'라 스스로 이름 붙인다. 루나디가스는 사르데냐의 양치기들이 새끼를 배지 않는 양을 가리키던 말이지만 동시에 괴물, 괴짜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결혼하고 나니 지인들이 제 배를 주시했어요. 소식 없어? 하는 눈빛으로요. 황당했죠. 전 레지스탕스였고 고시도 치렀어요. 지금까지 충분히 했는데 왜 임신까지 해야 하죠?

 주변 사람들은 왜 애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연륜 있는 여성들은 "나는 이만큼 해냈는데 뭘 더해?"라고 되물으며 유쾌하게 받아친다. 영화의 두 감독은 이제 예순을 넘었다. 그들이 여전히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계속 그려나가는 모습은 후세대의 루나디가스들에게 용기가 된다. 나는 나의 서른, 마흔, 쉰 이후의 삶이 얼마나 즐거울지 기대하며 적금을 하나 더 늘렸다! 걱정과 의심은 덜어내고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갈 준비를 하나하나 해보려 한다.


 스미타와 니콜레타, 마릴리사로부터 용기를 얻고 싶다면 9월 14일(금) 15시 ART 2관, 15일(토) 20시 50분 ART 1관에서 두 영화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