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나의 평범한 가족

피움 2012. 11. 21. 17:34

[피움리뷰 공모전 수상작]

 

 

 

내가 관람한 영화는 네명의 동성 커플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의 이야기를 다룬 <평범한 나의 가족(My tree)>였다. 마리는 두 명의 레즈비언과 두 명의 게이 부모를 둔 소녀로, 네 부모들은 각자 헤어져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탄절을 맞이해 마리는 부모들을 만나러 떠나고, 여행을 하던 중 문득 자신의 출생에 대해 궁금함을 갖게 된다. 이를 해결하면서 겪는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과연 가족이라는 것이 특정 요소들로 규정될 수 있을까?’ 였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 난 후면 곧잘 우리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시면서 너희에겐 미안하지만- 이라는 사과를 덧붙이곤 하셨는데, 그에 대해서 항상 나는 미안할 것 없어, 라고 대답했다. 설령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각자의 삶의 형태에 대한 하나의 선택일 뿐 그것이 나의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법적인 부부의 형태이든 아니든 그녀가 나의 어머니이며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는 것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 가족이 엄마와 아빠, 오빠, 그리고 다섯 마리의 애완동물들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나와 주고받은 애정, 충만감, 안정 그밖에 모든 것은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 맺어졌느냐가 아닌 관계 그 자체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애자 부모와 혈육으로 구성된 가족은 사회의 통상적인 형태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가장 많은 수의 형태일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가 어느날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머니가 트랜스젠더였다면, 오빠가 입양아였다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나의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개개인의 주관이지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상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족의 개념과 의의는 그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정의되어져야하며 개개의 가족에 대한 지표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타자화를 가족에 대입하는 순간,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차별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감독의 의도인지, 번역사의 단어 선택일 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 속에서 마리는 우리는 정상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비정상(abnormal)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마리의 가족은 나무(tree)이고, 나무는 끊임없이 자라고 변화하며 가지가 뻗어나가기도, 부러지기도 한다. 그 중 어느 시점의 모습이 정상이라고 규정될 수 없기 때문에 나무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비정상이 아닌가족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주목했던 부분은, 동성애자들의 굉장히 취약한 인권의 문제였다. 마리의 레즈비언 부모들은 아이를 입양하는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대리부를 구하고, 마리의 친모와 헤어진 또다른 엄마는 마리의 부모로서 아무런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없다. 심지어 동성애자들은 부부로 인정되기조차 매우 어렵다. 인권의 약자층들 중 여성, 어린아이, 빈곤층 등 대다수는 제도적 보장은 받고있으나 사회적 인식 변화의 어려움 때문에 인권 개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심지어 동성애자들은 윤리적, 종교적 문제와 결합되어 제도 및 정책적 배려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기존 제도와 정책들은 이성애자 사회에 근간해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이로 인한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동성 결혼의 인정은 동성애자를 법적으로 허용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그들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파생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권리들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하게 누려야 할 국가로부터의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 강간이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데, 동성 간 성욕의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성애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이며 동시에 지배적인 사회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가장 인권 소외를 겪는 것은 동성애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 다루어진 동성애에 있어 흥미로웠던 것은 마리의 아빠 중 한명이 스스로 게이바이를 구분하여 차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마리와의 만남에 새로 만나는 사람으로 여성을 데려오고, 마리의 출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른 아빠는 게이이고 자신은 바이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식당에서 멋진 웨이터를 보며 마리의 이야기에도 집중하지 못할만큼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를 보며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갖는 여성들처럼, 동성애자들 내에서도 거부감이 존재하며 자신들을 가급적 정상인 이성애자에 가까이 구분지으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리의 네 부모들 중 레즈비언 커플에 대해서는 아이를 입양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마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게이 커플은 크리스마스에 게이클럽에서 지내는 모습이나 위와 같이 연인이 있음에도 한눈을 파는 등 다소 성적으로 문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감독이 게이와 레즈에 대한 사람들의 차별적 인식을 보여주려 의도한 것인지, 혹은 그 스스로도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은연 중 보여진 것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감독이 여자이기 때문에 후자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도 어쩌면 나의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짧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많았고 아마도 영화를 곱씹을수록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나 결혼을 생각하지않고, 후에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갈 계획을 갖는 나에게 있어 훗날 결혼과 가정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닥쳐올 수록 이 영화가 준 가족의 의미는 더욱 뜻 깊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떠한 삶을 택하든 그것이 바로 나의 가족일 테니 말이다.
 
박현지(고려대 행정학과 4학년)
이 글은 지난 9월 말 개최된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의 영화 리뷰 공모전에서 2등을 수상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