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생명만큼 존중받아야 할 인간다운 삶

피움 2012. 11. 21. 17:36

[피움리뷰공모전 수상작] 델라웨어 12번가(12th & Delaware)를 보고

 

 

영화 델라웨어
12번가의 중심 주제는 낙태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경계로 찬반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나 여전히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지는 정확히 결론 나지 않은 사회적 쟁점. 고등학교 때 낙태를 주제로 한 토론에 참여했을 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델라웨어 12번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일단, 지금까지 나는 낙태를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다. 낙태는 살인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고, 본인의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닌 태아에게 너무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폭행을 당했다던가, 출산을 하게 될 때 산모가 위험해지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되도록 낙태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처음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낙태시술소를 찾는 여성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설득하고 상담하는 낙태금지센터 관계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부를 지나 막을 내릴 때쯤,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의문점이라면, ‘과연 낙태시술소를 찾는 여성들은 낙태를 원하는 걸까이었다. 그 누구도, 물론 원치 않은 결과로 인한 임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명백한 살인이라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느끼게 될 죄책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낙태금지센터의 사람들이 낙태시술소를 찾는 여성들에게 하는 말을 보면, 마치 그 여성들이 낙태를 원해서 시술받는 것처럼 묘사된다. 낙태시술소를 찾는 여성들은 조건이나 환경면에서 어쩔 수 없어 낙태를 결심하게 된 것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그들은 왜 낙태를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기 보다는 왜 낙태를 포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열을 올린다. 마치 그 여성들은 생명의 존엄성에 무지하고, 죄책감에 둔감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환경, 조건 면에서의 어려움을 표현하면 무조건 도와주겠다는 말로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놓고자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낙태시술소를 찾은 한 여성에게 낙태금지센터 관계자들 다수가 찾아가 아기를 키우는데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해 낙태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연 이들의 약속에는 계획성이나 현실성이 가미된 것일까? 낙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던 내가 봐도, 그들이 약속한 경제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생명에 대한 무책임함을 비난하면서도, 낙태금지센터의 관계자들은 스스로 무책임한 약속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모순덩어리다.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바인 생명권의 존중또한 충분히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 보면 사진이나, 직접적인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낙태시술소 또는 낙태금지센터를 찾아온 여성들의 상담내용을 듣다 보니, 낙태가 무조건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권이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따라 침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존중받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여성들이 낙태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아이를 키울 경제적, 환경적 여건이 적절치 못해서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아이가 크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기본적인 혜택을 받는데 소외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생명권은 좁은 의미에서는 생명의 침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로 해석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 생명이 일생을 살아가며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권리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낙태금지센터 관계자들은 생명에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는 지키고자 하면서, 그 이후 살아가면서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권리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태어난 후 접하게 될 부정적인 환경 요소, 기본적 혜택의 소외 등을 경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낙태를 하는 것이 생명권을 존중하는 길로 해석될 수 있지도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낙태가 장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임신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무산시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산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하면 이 후 임신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낙태를 장려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낙태 시술의 제한을 좀 더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낙태금지센터 관계자들은 낙태 시술의 제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경제적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 그저 좁은 의미의 생명권을 바탕으로 무책임한 약속을 통해 우선적인 낙태 포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낙태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이다. 델라웨어 12번가의 낙태금지센터 관계자들의 요구가 가장 잘 받아들여진 낙태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영화 속 이들이 낙태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말리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종교 측의 강한 저항을 반영하여 정치적으로 낙태를 제한하고 있다. 낙태는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어 나타나는 현상일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결과로도 볼 수 있겠다. 낙태에 대한 제한을 조금 더 완화하여 생명만큼이나 인간다운 삶을 존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창주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이 글은 지난 9월 말 개최된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의 영화 리뷰 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