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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마마> <게이머 걸> <라모나> <61일>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3. 02:41

완벽한 엄마가 되는 법

<아쿠아 마마> <게이머 걸> <라모나> <61일>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8기 소원


  우리 사회에서 ‘엄마’만큼 이중적인 시선을 받는 존재가 있을까. 사회는 엄마에게 다양한 조건과 기준을 제시한다. 모두 만족시키는 엄마는 ‘위대한 모성’으로 신성시되지만 한 가지라도 어긋나는 엄마는 쉽게 경멸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가족의 틀 바깥에서 출산한 엄마, 다른 사람 손에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엄마, 일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만 돌보는 엄마, 너무 화려한 엄마, 너무 후줄근한 엄마… 엄마가 ‘욕먹을 일’이란 수없이 많다. 여성은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거의 초인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맘충’이라는 혐오 신조어는 우리 사회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엄마에게 가해지는 터무니없이 높은 허들을 보고 있자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완벽한 엄마’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완벽한 엄마’에 대한 신화는 공고하다.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그 신화가 유지되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엄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헌신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렇지 않은 엄마는 대개 악녀의 자리에 있다.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미디어 속 엄마들은 현실 속 엄마와는 괴리가 있는 납작한 모습이다.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다음 네 편의 영화는 현실 속 엄마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사회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 더 나아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쿠아 마마>

  부푼 배를 안고 수영하는 임산부들 사이에서는 출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간다. 그 대화에는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화면이 바뀌면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아기와 푸석해진 얼굴로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은 주인공 페닐레다. 배우 한 명과 여러 명의 실제 엄마들이 등장하는 <아쿠아 마마>는 이 사회가 신성시하는 육아의 현실을 보여준다. 현실의 육아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어도 힘든 일이다. 매 순간 아이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힘들어하는 페닐레의 모습은 현실을 돌아보지 않은 채 우리 사회가 신성시하기만 하는 모성애를 되돌아보게 한다.



  <게이머 걸>

  게임은 인생을 닮았다. <게이머 걸>에서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기혼 여성의 인생을 게임으로 만들었다. 인물도 게임 캐릭터처럼 도트로 이루어져 있고 게임화면을 보듯 내용이 진행된다. 가장 쉬운 1단계는 남녀 한 쌍이 결혼하고 아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게임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기 시작해 최종 레벨에서는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살아야 한다. 유튜브에서 한창 난이도 극악의 게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패턴도 없는 장애물이 계속 튀어나와 진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게이머 걸>의 게임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여성이 엄마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하며 사는 것. 이 게임은 과연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일까? 발랄한 게임의 음악과 대비되는 엄마 캐릭터의 현실에 씁쓸해진다.


  <라모나>

  라모나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짧은 점심시간, 라모나는 밥만 먹는 게 아니라 남편의 식사도 차려야 하고 손녀의 선물도 사야 한다. 라모나는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엄마이자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밥을 차려주는 남편은 외도를 일삼고, 근무시간에 가정과 관련된 많은 일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작업반장에게는 폭언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라모나’라는 개인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지친 라모나의 얼굴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그 얼굴이 우리 주변 수많은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모나를 비롯한 모든 엄마가 마침내 웃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62일>

  말리스 무뇨스는 임신 초기에 폐색전증으로 뇌사판정을 받는다. 말리스는 생전에 연명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임신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 연장 장치를 단 채 살아있지도, 죽지도 못한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 의사들은 태아가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임신한 환자의 연명치료는 중단하거나 보류할 수 없다’는 법 때문에 말리스의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앞선 작품들이 여성이 엄마일 때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일들을 다루었다면 <62일>은 여성의 몸이 사회적으로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취급되는 현실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엄마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이중적인 태도는 결국 사회가 여성을 취급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여성을 한 개인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위한 도구, 속된 말로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보는 시선이 엄마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완벽한 엄마가 되는 법’이란 없다.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사람들이 허상을 치켜세우는 동안 그 뒤에는 엄마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있다. 여성은 엄마로 태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엄마가 되기 위한 존재도 아니다. 여성은 엄마이기 이전에 남성과 동등한 ‘사람’이다. 소개한 <아쿠아 마마>외 3편은 9월 13일 17:20, 9월 16일 15:55에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