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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봐>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여자1 여자2 여자3> <수잔과 남자> <루비 파샤의 전설>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3. 05:06


참지 않는 여자들

<웃어봐>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여자1 여자2 여자3> <수잔과 남자> <루비 파샤의 전설>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소원


  최근 상연된 연극 <비평가>는 두 여성 배우가 극을 이끌어갔다. 두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원작 희곡과 달리 이번에 공연된 <비평가>에서 두 여성 주인공을 볼 수 있었던 건 '젠더 프리 캐스팅' 덕이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연극판의 성비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반드시 남성 또는 여성이 맡아야 하는 배역이 아니면 성별에 상관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고전을 비롯해 무대에 오르는 극이 대부분 남성 인물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 그 때문에 역량이 뛰어난 여성 배우가 있더라도 맡을 역할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껏 여성이 연극계에서 얼마나 소외되고 차별받아 왔는지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여성이 어떤 직업을 가지거나 일하고자 할 때 차별받는 건 연극계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로 여겨지던 금융계나 정치계, 과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 비율이 더 높은 출판계나 디자인계조차도 상위 관리자는 남성인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여성'으로 취급받아 온 결과이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여성이 일터에서 당하는 성차별은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합리화되어오곤 했다. 심지어 성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연극계의 '젠더 프리 캐스팅'을 비롯해 지난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 운동' 등 최근 여러 가지 사회 변화는 더 이상 여성들이 부당한 일을 참고 있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이야기함으로써 침묵은 깨지고, 결국 세상은 바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여성의 분노에 공감한다면, 다음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웃어봐>

  웃을 기분이 아닌데, 눈치 없이 웃으라고 말하는 인간만큼 얄미운 게 없다. 게다가 그 웃으라는 이유가 ‘여성은 웃는 게 예쁘고, 찡그리면 주름살 생기니까’라는 말처럼 '여성'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더욱더. 엘레나도 그런 처지다. 웃고 싶지 않은데, 앞에 선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웃을 것을 강요한다.



  <수잔과 남자>

  면접을 보러 온 수잔은 계속해서 성희롱 발언에 시달린다. 끝도 없는 남자의 말을 듣다 못 한 수잔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놓는다. 부들부들 떨던 남자는 결국…. 자꾸만 헛소리를 일삼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가. 이 영화는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연극, 특히 남성이 주인공인 고전극에서 여성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은 한정적이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에서 주인공은 ‘맥베스’의 ‘맥더프 부인’ 역을 맡는다. 연출가는 맥더프 부인이 극 중 심하게 구타당하는 장면이 더 ‘생생하기를’ 바란다. 그 결과, 연출가와 연극은 좋은 평을 받지만 주인공의 몸은 온통 멍 자국으로 가득해진다. 공연을 계속할수록 주인공에게도 한계가 온다.



  <여자1 여자2 여자3>

  최근에 모 영화에서 여성이 ‘시체’ 역을 맡은 데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시체’역을 ‘여자시체’ 역으로 바꾸어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캐나다라고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캐나다에서 공공지원금을 가장 많이 받은 방송 29편 중 17편은 단 한 명의 여성 감독도 쓰지 않았고, 방영된 방송 293회 중 여성이 연출한 방송은 33회뿐이다. 영화와 TV 산업에서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 수치를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풍자하며 유쾌한 희망을 제시한다.



  <루비 파샤의 전설>

  루비 파샤는 결혼을 하는 대신 곤충학자가 되기로 한 파키스탄의 여성이다. 그는 파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약혼자의 가족에게 위협받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 여성 앞에 펼쳐진 길은 가시밭길일 것이다. 그러나 루비 파샤는 참지 않는 여성이다. 그는 제목 그대로 '새로운 전설'이 된다.


  부당한 상황에 맞서 싸우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용기, 의지, 연대… 그중에서도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건 유머가 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 유머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엎고 바꾸는 상상,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상상 말이다. <웃어봐> 외 4편의 영화는 유머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단편들이다. 각 단편 속 다섯 명의 여성은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에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한 가지 힌트를 준다면, 이들은 모두 ‘참지 않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어떤 상상을 하든, 관객들은 영화 속 기발하고 절묘한 상상력에 깔깔거리며 극장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당 단편들은 9월 13일 21:00, 9월 15일 20:30에 만나볼 수 있으며, 9월 15일에는 상영 후에 피움톡!톡! <코리안 페미니스트들의 스탠딩 코미디쇼>가 준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