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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파워 / 순결학개론]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여성들의 전쟁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8. 23:31

[걸 파워] & [순결학개론] :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여성들의 전쟁

 

 

1. 걸 파워

 

  과거 여성을 억압했던 것은 무엇일까? 종교의 교리? 봉건적 도덕관? 보수적인 전통? 남성중심 사회질서?

오늘 날의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이 더 생겼다. 바로 기업(자본)’미디어이다. ‘걸 파워는 여성도 남성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1970년대 제 2기 여성운동에서 나온 단어다. 하지만 걸 파워가 기업과 미디어와 만난 순간 능동성과 자유를 지향하는 본래의 뜻은 퇴색되어 버리고, 남성이 여성을 원하도록 하는 여성의 성적 매력이라는 뜻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여성 자체로써의 아름다움이나 개인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남성중심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는 여성이 걸 파워라는 뜻이다. 게다가 기업과 미디어는 걸 파워를 철저하게 상품화 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여성 포르노 모델들과 선정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들은 남성들의 눈요기 속에서 변질된 걸 파워의 기준이 되어간다. 아이들의 여성의 능동성과 진취성에 대한 학습의 기회마저 앗아갔다. 여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업이 만들어낸 공주 이야기를 듣고 공주 만화를 보고 공주 인형을 갖고 놀면서, 예쁜 것이 곧 힘이 된다고 학습한다. 남성중심사회 속 수동적이며 남성 판타지를 대변하는 여성상인 공주들의 이야기를 재학습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세상은 여자가 남자처럼 못 할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의 직업은 할 수 있어도 여성스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늘 날 세상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거짓말이다. 공주님 바비가 아닌 카레이서 바비가 나왔지만 금발과 섹시한 유니폼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바비에게서 가슴과 허리를 강조한 옷을 벗겨내고, ‘도라를 부엌데기나 공주나 쇼핑걸이 아닌 원래의 모험가로 되돌려 놓을 때, 어린 소녀들이 진짜 걸 파워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순결학개론

  순결이란 무엇인가. 처녀성이란 무엇인가. ‘순결이란 잡다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이며, ’처녀성이란 미혼 여성의 성교하지 않은 상태의 순수성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순결하지 않으면 처녀가 아닌가. 남성의 순결은? 순결은 지켜야 하는가. 순결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순결의 기준은 무엇인가.

 

 여성에 대한 순결신화는 동서를 막론하고 중요시 되었다. 하지만 이 순결신화는 결코 고결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남성중심 사회구조와 남성의 욕망과 가계계승자를 생산해야할 의무가 주어진 당시 여성의 지위가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순결신화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성()에 대해서 어떠한 자율권이나 결정권 없이 철저하게 감시와 통제를 받아왔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들은 여전히 순결신화속에 갇혀 있다. 언뜻 보기에는 여성의 성적 지위가 향상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남성들은 처녀성에 집착하고, 시장(市長)처녀성을 상품화하여 계속해서 순결신화를 재생산한다. 처녀막 복원수술이나 질 수축수술, 가짜 처녀막이 쏟아져 나온다. 기독교 근본주의에서는 소녀들에게 혼전순결서약을 하게끔 한다. 개인의 성적 자율권이 마치 어떠한 소유권처럼 신과 아버지와 미래의 남편에게 양도되는 것이다. 소녀들의 혼전순결을 위해 성행위를 죄악시하거나 근거 없는 괴설들을 들먹이기도 한다. 어쩌면 영화 속 말처럼 이브는 유혹에 약한 게 아니라 알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경은 처녀성을 잃지 않은 채 임신한 수동적인 마리아를 여성의 이상적인 표상으로 올려놓았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와 순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별별 행위들은 다 해도 첫날밤을 위해 삽입행위는 미루고 있는 커플, 철저한 혼전순결주의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자신의 섹스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든 대학생, 자신의 처녀성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 그 중 혼전순결서약으로 첫 번째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끝냈던 여자가 있다. 금기 속에서 섹스에 대한 무지함 속에 섹스에 대한 환상을 꿈꾸다 실망해 몇 년 간 섹스하지 않았던 그녀는 말한다. 섹스가 일상 속으로 돌아와 기쁘다고. 또 트랜스젠더 메간은 왜 항상 음경이 질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고대하던 결혼식 날 입을 웨딩드레스를 고르다가 흰 색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 웨딩드레스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동생의 집 마당에서 남편과 똑같이 녹색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한다.

 

 

  처녀막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것은 자궁이 만들어지고 남은 것일 뿐이다. 마치 플라스틱 인형의 손가락이 플라스틱 여분이 다 떨어지지 않고 사이사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순결을 논하고, 처녀와 헤픈 여자를 나눌 만큼 중요한 것일까.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자는 섹스를 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안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그리고 또 말한다. 처녀도 걸레도 없으며,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뿐이라고. 이제 순결학개론은 없어져야 한다. ‘순결신화를 무너뜨리고,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과 소통과 공존과 평등이 존재하도록 하는 것. 이를 테면 사랑학개론이나 평등학개론’, ‘인간학개론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김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