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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이지 않은 성]'성'이라는 이름표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9. 03:16

 

<두 개이지 않은 성>

-남성 혹은 여성, 답안 없는 선택지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두 개이지 않은 성>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이지 않은 성>1500-2000명에 한 명꼴로 태어나는 간성Intersex’에 대한 이야기이다질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으로, 페니스가 있기 때문에 남성으로 부르도록 하자는 언어체계 내의 약속이 법칙으로 굳어져 버린 현재 사회에서, 양쪽 모두를 지니고 태어난 그들은 남성/여성이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간성이라는 태생적 정체성을 버리고 남성 혹은 여성으로 자신을 교정해야만 했다.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면, 정의내릴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nothing”일 뿐이라는 사회의 폭력적 협박 속에 고통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회구조는 끊임없이 그들을 기존 체제 내로 길들이려 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야만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 내에서 하나의 이름, 여성 혹은 남성으로 불리기 위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심지어 부모와 의사의 결정만으로 두 성기 중 하나를 잘라 내거나 붙이고, 변형해야 했다. 부작용의 위험을 안고 호르몬제를 투여했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어왔다고 한다. 이런 시도들 끝에 그들은 마침내 여성 혹은 남성으로의 이름을 얻게 된다. 하지만 결국 간성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조차 그것이 그들의 진짜 성이 아님을 깨닫는다.

 

 

사실, 이 견고해 보이는 사회는 너무도 자의적인 체계 위에 놓여있다. 내가 여성일 수 있는 이유는 질과 같은 이름이 붙여진 생식기를 가지고 있으며 나와 같은 이들을 여성이라 부르도록 사회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만약 약속 당시, 나 같은 생식기의 소유자를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 명명하기로 했다면 여성은 현재 남성으로 불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언어의 기본 속성인 자의성이며 이 자의적인 언어가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는 체계이다. 그러나우리가 언어를 통해 살아가는 이상 이름표를 떼고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간성이라 부르는 이 사람들을 간성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약속한다면, 그들은 남성/여성이 아니라 진짜 성별로서 간성이 될 수 있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두 개이지 않은 성> 스틸컷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화 안에서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계속 제시되었던 다름에 대한 관용일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은 수술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다.”, “자기 자신에게 편안해 지는 것이 어려웠다.”, “나 자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의사의 결정을 통해 잘라 내거나 성형할 성기를 정하고, 그 후엔 자신의 몸에 남은 성기에 따라 성역할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강요는 회색지대 없는흑백논리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라는 사적 해결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관용이고 나아가 그 논리체계를 전복하려는, 혹은 부드럽게 하려는 노력이다. 주류 세계에서 외따로 떨어진 예외에 대해 올바른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이렇게 될 때 이들은, 그리고 나아가 우리 모두는 진짜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그 시작점으로 '그 날'을 고대해 본다.

 

 

 

 


 

제 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이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