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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파워 / 순결학개론] 여성의 의무에 대한 고찰

한국여성의전화 2013. 11. 9. 03:44

 

여성의 의무에 대한 고찰             

 

 

걸 파워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걸 파워> 스틸컷


티브이를 보면 짧은 옷을 입고, 섹시하게 화장을 하며 엉덩이를 흔드는 여자 아이돌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비슷비슷한 색깔을 가진 아이돌 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시장에 더 잘 먹히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차라리 솔직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시장이라고 함은 명백하다. 타깃은 남성. 남성에게 어필하려면 보다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여성의 의무이자 조건이다. 걸 파워가 주는 메시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함으로 점철된 영화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 는 처음에 바지를 입고 가방을 메고, 망원경을 들고 있는 보통의 캐릭터였다. ‘여성적’ 이지도 ‘남성적’ 이지도 않은 그냥 사람인 캐릭터. 그러나 제작자의 손에서 벗어난 캐릭터는 이후 예쁜 옷을 입고 여성스럽게 꾸며진 ‘도라 공주’ 가 되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걸 파워가 무엇인가. 처음의 걸 파워는 여성이 뭔가를 리드할 수 있는 힘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대답했다. 예쁜 옷을 입고, 보다 아름다워지는 것. 의무적으로 브랜드 옷을 사고, 꾸며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움이 의무처럼 달라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매체와 미디어의 힘은 무섭다. 말 한 마디, 사진 한 장이 주는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 대중매체가 여성의 의무가 예뻐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세뇌당한다. 끊임없이 미디어를 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만이 여성의 의무라고 믿는다.

 

 


순결학개론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순결학개론> 스틸컷

 

여성의 의무가 또 있다. 순결학 개론은 여성에게 ‘순결’ 이라는 이름의 의무를 덧씌운다. ‘순결’ 이라는 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깨끗함. 여성에게 순결함이란 섹스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음.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순결함이 대체 무엇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처녀성을 간직하는 것. 섹스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 제각기 다른 대답이었지만 결국엔 하나로 이어졌다. 여성의 순결함은 ‘처녀’ 와 직결되었다. 남성과 잠자리를 가져도 삽입을 하지 않으면 ‘처녀’ 가 된다. 혼전 순결을 유지하는 처녀가 되기 위해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우스운 일이다. 이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사람은 억지로 처녀막을 질 안에 삽입하기도 한다. 처녀성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의무일까? 다시 한 번 의문이 드는 순간, 도대체 이 여성의 의무는 누구를 위한 의무인가 생각이 든다. 결론은 하나다. 남성을 위한 것이다. 남성에게 잘 보이는 것이 여성의 의무이다.

 

“섹시스타” 브리트니는 어린 소녀로서 섹시하게 춤을 출 때는 각광받았다. “섹스” 후 임신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의 브리트니를 사람들은 외면했다. 섹시하지만, 섹스는 하면 안된다. 모순적이다. 이 모순 아래 남성들은 열광하고 여성들은 마치 자신의 역할이고 의무인 것처럼 생각한다. 끊임없이 강요 받는다. 그건 영화속에서나 현실속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도 여성성을 강요받는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 더 예뻐져야 한다. 처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 있다. 티브이 속 연예인들이 짧은 옷을 입고 나와 매끈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춤을 추는 걸 볼 때면 괜히 내 다리와 비교하게 되고, 화장을 예쁘게 한 사람을 보면 나 역시도 진한 화장이 하고 싶어진다. 예쁜 얼굴과 잘 빠진 몸매가 여성을 설명하는 전부는 결코 아닌데 외모를 가꾸는 것이 여성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보고는 가방을 씌워 섹스를 하면 된다고 말하는 뭇 남성이나, 섹시 아이콘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여성이 20번 이상 성관계를 하면 걸레라고 취급하는 어떤 남성. 못생긴 여성은 예쁜 여성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사회나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들을 우대하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 역사 속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대접받지 못했다. 지극한 가부장적 사고 방식과 제도 아래에서 남성들은 보다 남성 우월주의적 시각을 키워갔다. 중세 시대에 여성은 하나의 덤이자 상품처럼 여겨졌다. 시간이 흘러도 그러한 역사 속 사고 방식은 이어졌다. 남성은 여전히 사회 속에서 우월했고, 여성은 차별 받았다. 내가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남성은 여러 차례 성관계를(무제한으로) 해도 되지만, 여성은 5번 정도만 제한하는 어떤 남자의 태도였다. 개인은 반드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이 당연하게 뿌리 박힌 사회에 소름이 끼쳤다.

 

두 영화는 끊임없이, 걸 파워란 무엇인가? 순결함이란 무엇인가? 묻는 것으로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사회의 가르침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여성의 의무에 대해 세뇌당한 사람들은 그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반기를 들기도 한다. 처녀성을 억지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처녀성을 이용했어도 섹스는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순결학개론에서 처녀성을 상품처럼 드러내었어도 섹스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29세의 여자를 볼 때는 마치 그녀가 ‘순결’ 을 강요하는 사회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꼈다. 걸 파워의 마지막 정의는 ‘걸 파워란, 여성들이 함께하는 것’ 이다. 여성들이 힘을 합쳐서 사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 혹은 남성의 이미지가 있지만, 그 이미지를 곧이 곧대로 고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인간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_우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