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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배구단] 안 보면 모른다, 유쾌발랄 할머니 배구단

한국여성의전화 2014. 9. 27. 01:20

안 보면 모른다, 유쾌발랄 할머니 배구단

다큐멘터리 <할머니 배구단> -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할머니 배구단> 스틸컷


  

참 기대돼. 올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로(98)

 

낙천주의자들이라는 배구단이 있다. 고로는 그 배구단의 일원이다. 가장 어린 단원은 66. 98세의 고로가 제일 연장자다. 노르웨이의 이 할머니 배구단은 유쾌하고 진지하게 배구에 임한다. 비록 정식 경기에서 주의해야 할 경기장 라인 색깔이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 잘 모르고, 공을 두 주먹으로 날려버리는 이른바 복싱기술을 구사하더라도 말이다.

 

지난 해의 달력을 버리며 고로는 말한다. 다가오는 새해가 참 기대된다고. ‘내일 모레’ 100세가 될 사람의 발언이라고 믿기엔 충격적이다. 고로를 지켜보는 관객이 충격에 휩싸인 이유는 자명하다. 노인과 내일, 노인과 미래, 노인과 기대는 일반적으로 조응(照應)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노인들을 뒷방 늙은이로만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늙은 사람은 언제부터 힘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을까.


자본의 프레임, 그 밖의 것들

 

자본주의에서 중요하게 대우받는 사람은 생산이 가능한 사람이다. 줄여서 경제활동가능인구’(경제인구) 내지는 생산가능인구라고 부른다. 이 인구의 범주는 보통 15세에서 65세 사이로 설정된다. 어린이들은 앞으로 경제인구에 진입할 잠재인력이라 보호 받지만,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노인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나 생산인구와 같이 동등한 인구로 인정받기 힘들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받고, 또 그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받던 시절은, 돈 많은 사람과 돈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에 의해 밀려난 지 오래다.

 

낙천주의자 할머니들이 배구를 하는 것은, 자본의 프레임 밖에 놓인 자들이 자본의 프레임 밖의 것을 행한다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다. 그들은 주류 프레임에 속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배구를 즐긴다. 정식 기술이든 복싱기술이든, 공을 넘기고 받고 또 우왕좌왕 하면서, 할머니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스웨덴 할아버지 배구단과의 경기에서도, 할머니들은 승부욕에 불타오르면서도 엄청 즐거워 보인다. 암과 치매로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기 싫어서 죽는 거야라는 배구단 할머니의 말은, 이기고 지는 것이 즐거운 삶에 중대한 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관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나도 엄청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배구를 해보겠다는 노쇠한 몸들에 대한 조소(嘲笑)가 아니라, 배구로 발산되는 할머니들의 유쾌하고 건강한 에너지에 대한 찬사의 웃음이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로, 구부정한 허리로, 얇디얇은 팔들로, 할머니들은 배구를 한다. 유머와 의지와 동료애로 가득한 할머니들을 보고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새 가슴 저 한 켠에 뿌듯하게 밀려오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것이 재미없거나 나이 드는 것이 두려운 이들에게, <할머니 배구단>을 추천한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오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