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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디라트와 하프사트] 여성 계보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한국여성의전화 2014. 9. 27. 01:21

여성 계보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다큐멘터리 <쿠디라트와 하프사트> -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쿠디라트와 하프사트> 스틸컷

 

 

‘우리는 후대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일전에 여성학 강연을 들었을 때, 강연의 마지막 즈음 강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때 그 강사는 남성들은 정치건 학문이건 너무도 자연스럽게 후대를 만들고, 그들의 이름을 남기는 데 과연 여성들도 같은 방식으로 후대를 만드는 게 가능한 지 질문했다. 당시 나는 당면한 현실이 급박한데 후대가 무슨 문제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뜻하지 않은 사건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한 정당이 심각한 내분을 겪고 그 내분의 원인으로 계파가 지목되었을 때였다. 각 계파는 자기가 원류로 삼은 선대의 이름을 내걸었는데, 그 중에 ‘여성’은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시작된 역사가 백년 가까이 되었는데, 대중적으로 기억되는 여성 정치인 ‘선대’는 없다. 심지어 가장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과거의 여성은, 정치인이 아닌 누군가의 영부인이다. 나는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후대를 가지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여성’민주화 운동가 하프사트

 

영화 <쿠디라트와 하프사트>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영화다. 영화의 주된 화자인 하프사트는 나이지리아 최초로 민주선거로 뽑힌 대통령인 아비올라와 그의 아내 쿠디라트의 딸이다. 아비올라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나이지리아 대중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또 다시 벌어진 군사 반란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영화에서 비유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나이지리아의 넬슨 만델라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쿠디라트는 억울하게 수감된 남편의 구명운동을 펼치며 나이지리아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군부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던 그녀는 결국 암살을 당하고 만다. 또한 남편 아비올라 역시도 군부 정권의 붕괴와 함께 출감을 앞두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두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하프사트가 나이지리아로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앞서 이 영화가 서두에 제기된 질문의 ‘답’과 같은 영화라고 한 것은, 하프사트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인 쿠디라트의 이름을 적극 빌려 정치단체를 세운 점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그녀는 ‘쿠디라트 민주화 재단(KIND)’을 세워 정치 운동에 힘을 쓴다. 그리고 이 재단의 주된 목적은 나이지리아 여성의 권리 신장이다. 심지어 그녀의 무슬림 남자 형제가 이 움직임을 탐탁치 않아함에도, 그녀는 아랑곳 않고 재단을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여성 정치인이 나이지리아의 대안임을 적극적으로 역설한다. 만일 통상적인 기록자가 나이지리아 민주화 운동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면, 아비올라의 아내와 딸로서 쿠디라트와 하프사트를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쿠디라트가 정치계에 전면으로 나선 계기는 북부 나이지리아 방언을 못하는 남편의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 이며, 그녀가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 역시 아비올라 석방운동을 통해서 였기 때문이다. 쿠디라트의 운동 인생이 대통령 아비올라의 연장이기 때문에, 이 후의 역사도 아비올라를 중심으로 계보를 그림이 가능하다.

 

왜 ‘어머니의 이름으로’인가

 

하지만 영화가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쿠디라트의 이야기에 조금 더 천착하면서 부터다. 영화는 아비올라가 각 지역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 유지의 딸과 결혼하는, 굉장히 가부장제 적인 선거 전략을 수행한 모습을 지목하고 이로 인해 쿠디라트가 겪은 감정적 부침을 진술한다. 또한 빈민 출신이자 저학력자로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쿠디라트가, 남편이 수감되고 구명운동을 통해 공적 이슈의 한 복판에 진출하면서 어떻게 자존감을 회복하였는지도 충실하게 증언한다. 말하자면 ‘남성 정치인의 추락-여성 조력자의 복권 노력’으로 정리될 수 있던 이야기는, 아비올라의 한계를 고찰하고, 그의 부재가 만들어낸 생각지 못한 효과를 서술함으로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생각지 못한 효과란 쿠디라트가 민주화 지도자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아비올라에 못지않은 혹은 뛰어 넘는 리더십과 용기를 보여준 것일 게다.

 

영화의 상영이 끝난 뒤, 한 관객이 물었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라면, 민주화에 헌신했던 여성 운동가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들은 그저 남성의 조력자로만 기록되고 금세 잊히지 않았을까 하고. 이 질문은 작금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하프사트가 ‘리더’로서 어머니를 계승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영리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그녀의 무슬림 남자 형제조차 ‘여성 지도자는 안 된다’는 현실에서, 그녀가 이미 존재했던 여성 지도자인 어머니를 계승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여권신장을 외칠 때, 하프사트는 그녀 앞에 놓인 벽, ‘여성 지도자’는 안 된다는 벽을 넘을 수 있다. 무슬림 경전의 ‘여성이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망가진다.’는 말이, 이미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끈 여성의 역사 앞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상속’받은 자리에 앉은 여성리더가 아니라, 그 자리를 ‘쟁취’한 여성 리더가 필요한 작금의 시기, 우리 또한 역사를 다시 보고 다시 서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리더의 자리를 쟁취하고 투쟁한, 여성 운동가의 역사를 말이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