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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baeg]><오늘 너는><여자도둑><수지> 어떤 얼굴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한국여성의전화 2014. 9. 27. 01:21

어떤 얼굴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  경쟁부문 <Back[baeg]>, <오늘 너는>, <여자도둑>, <수지> -

 

이 단편들은, 각기 다른 감독들이,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어 진 영화들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영화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영화들은, 마치 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걷고 있는, 나와 당신 모두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얼굴들이 모여, 바로 지금 여기의 풍경을 이룬다. 긴 도로의 도시 위에, 각기 다른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녀들의 얼굴은 어쩐지 창백하다.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BACK[baeg]>


당신, 회사에 갇혀 있는 당신의 얼굴


<Back> 의 희재, 그녀는 분명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도 뒤도 없는 자신의 삶을 탓하기 전에 성실히 살았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어긋난다면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릴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픈 아버지,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어머니, 군대 간 남동생, 어느 하나 편안히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야 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오로지 개인적 능력으로 빛을 발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최대한 받아들인다. 또한, 조금은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늘을 산다면, 내일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희재의 시종일관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에,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은 잠시 웃음이 머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내 얼굴은 다시 사색이 되고, 슬픔으로 얼룩져 흘러내린다. 슬픔이 물처럼, 그렇게 흘러내리는 것이다.
도시는 가혹했다. 또한, 회사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희재의 얼굴보다는, 뒤에 그림자처럼 숨겨진 얼굴이 더 중요한 것이다. 희재는 가질 수 없었던 얼굴, 그것은 권력과 돈을 소유하고 있는 아버지, 삼촌, 상사, 그리고 돈의 얼굴이다. 희재는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들 수 없다. 자신의 얼굴로는 언제나 인정받을 수 없다. 오로지, 뒤에 유령처럼 떠도는 빽의 얼굴을 통해 내 얼굴이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희재는 그렇게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사회는 그렇듯, 진정한 희재의 얼굴은 묵인한 채 굴러가고 있다. 늘, 비슷하게, 여전히.


당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당신의 얼굴


고등학교 교실, <오늘 너는> 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상한 쪽지가 손에 손을 거쳐, 보라의 손에 쥐어진다. 당혹스러운 얼굴의 보라, 결국 쪽지에 적힌 타겟, 반장에게 건네어 모든 상황을 종결하려 한다. 하지만,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무표정으로 숨기려고 하는 얼굴은 이내, 반장의 얼굴을 보자 흔들린다. 쪽지에는 ‘반장이 레즈래’ 라는, 고등학교 시절 암암리에 생길 법한 가쉽이 적혀있다. 반장은 이 쪽지를 보고, 아무렇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체육시간에 교실 한쪽 구석에 쳐박혀 일그러져 있다. 보라는 내내 마음에 걸려하며 반장을 찾아다니다 마주치게 되고, 반장의 눈물은 보라의 가슴에 하나의 불꽃을 일으킨다.
불꽃이 일어난 자리에, 학교의 종소리와 아이들의 소리가 잔해처럼 흩어지며 두 사람을 감싼다. 그녀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에 무수한 긴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마치 거울처럼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라는 어쩌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수 많은 아이들의 얼굴, 그 얼굴 사이에 네가 어떤 얼굴이든 그리고 내가 어떤 얼굴이든 마주볼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들추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여자도둑> 스틸컷


당신, 거리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서 있어야 하는 당신의 얼굴


승연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이다. <여자 도둑>의 어린 승연은, 가출한 상태다. 거리 위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무슨 이유로 여기서 이렇게 떠돌고 있는지 모르지만, 충분히 녹록치 않다는 것을 상처투성이의 앳된 얼굴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생기가 돈다. 도망치듯 유통기한이 임박한 삼각김밥을 가져다 먹고, 발랄한 걸음걸이로 움직임이 가볍다. 승연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는 순간은 자신이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다. 거리의 생활에, 생리는 당혹스럽고 난감한 문제일 것이다. 승연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승연은 도둑질을 하게 된다. 그 순간은 갑작스럽게 펼쳐지고 이후,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어둠의 손길이 승연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제 초경을 시작한 승연에게 어둠의 손길은 손쉽게 다가선다. 생리대를 훔친 것을 묵인해 준 대가로 어둠의 손길은, 그토록 가혹하게 승연을 침투한다. 도시의 얼굴은 참으로, 사납고 매섭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얼굴도 가지지 않은, 어둠으로 치장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승연의 얼굴은, 여기서 생리대를 훔친 이제 소위, 갓 여자가 된 소녀일 뿐이다. 도시는, 그리고 그 안에 기생하는 어둠의 손길은 이를 너무도 쉽게 이용하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당신,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과거와 마주한 당신의 얼굴


<수지>의 수지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표정의 변화를 알기 어려운 얼굴과 침묵은, 여고생이라고 하기엔 깊은 구석이 있다. 무술을 하는 소녀인 수지, 모든 것을 내맡기고 펀치를 날리는 그녀의 모습은 무표정하고 침묵이 담긴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다. 수지는, 봉사활동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얼굴을 본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로 자신을 돌아가게 하는 그 얼굴, 바로 아버지였다.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만져댔던 아버지, 수지의 비참했던 기억 속의 아버지는 현재 복지 대상자였다. 수지는, 결심을 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 너무도 생생히 파묻혀 있는 그 얼굴을 깨부수기로. 그래서, 수지는 그토록 강해져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얼굴을 마주쳤을 떄, 자신이 소스라치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얼굴을 나 스스로 깨부수기 위해서.


누군가 내게, 자신의 과거의 한 장면을 말했을 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나를 힘겹게 했다. 수지의 얼굴 속에서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본 것 같다. 그들은, 스스로 강해져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했다. 그리곤 마음 깊은 구석에 남은 상처를 혼자서 치유해야만 했다. 시간으로 인해 무뎌졌고, 이젠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모든 과거의 고통이 무로 돌아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는 그들 곁을 떠난 것처럼 굴지만 거기에 있다. 수지는 내게 그들의, 그리고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겪게 하고 슬프게 한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오는 길은, 꽤나 씁쓸하고 무겁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얼굴은 지금 여기의, 나의 혹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가깝게 그녀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이 단편들은 우연치 않게 이 도시를 보여준다. 도시 속에 우리가 스치듯 지나치던 수 많은 얼굴들이 너무도 가깝게 영화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오늘은 곧, 나의 오늘이자 당신의 오늘일 것이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유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