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페미니스트에게 듣다] 한국판 ‘페미니스트에게 듣다’를 꿈꾸며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1:01

 

한국판 ‘페미니스트에게 듣다’를 꿈꾸며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에게 듣다> -

 

 

왜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어려워할까?

 

 

 

언제부턴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마치 비밀집단의 암호처럼 은밀하게 이야기되고, 이를 발설할 시에는 마치 남산 저 아래 이름모를 밀실에 갖혀 고문을 당할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였다. 과장하여 말했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갖는 힘,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무겁고 두렵다. 영화 ‘페미니스트에게 듣다’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어려워할까?
감독 제니퍼 리는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페미니스트들을 인터뷰 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그려간다. 그리고 여성주의 교과서처럼 시대별로 여성주의를 읊어가는 전개 속에서 두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여성주의에 참여했고 논의했구나’ 하는 당연하지만 놀라운 이야기. 그리고 ‘지금 우리는?’이라는 아주 막막한 현실과 그 속의 내 모습.

 

우선 사회가 평등해지고 나서 성평등을 이야기하라?

 

“혁명은 남자의 미래였고, 거기엔 여자는 없었다”는 다큐멘터리 속 대사는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민주화의 물결, 그리고 치열했던 노동운동 속에서도 여성은 “운동의 꽃”으로 불렸던 그 때. 그리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 여성의 운동은 마치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노동을 빛내주는 마스코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운동속에서 일어나는 분업화. 시위에서도 소위 “예비군 오빠”들의 보호 아래 평등을 외치는, 또 그것이 보호라고 생각하는 위선적인 태도라던가. 운동권 모임이나 정치적인 이슈 중에서 성폭력이나 차별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우선 사회가 평등해지고 나서 제기해도 늦지않다”고 말하는, 여성문제를 주변화 시키는 태도 같은 것들이 비일비재하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성폭력 문제를 대할때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정작 피해자에 대한 상황이나 처우 개선에 대해선 관심이 적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다시 새로운 운동을 꿈꾼다


이와 더불어 여성문제속에서도 다양한 이슈들이 맞물린다. 여성주의 속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문제, 계급문제, 노동문제. 오히려 분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피움톡톡에 참여한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여성주의는 다양한 사람들을 담을 수 밖에 없다”며 “우리는 모두 다른 상황과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여성주의의 다양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를 하나로 합치려는 것은 강제로 ‘봉합’하는 것”이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함께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영상속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한계들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이 쓴 책의 이론에 대해 자신이 깨나간다는 이야기, 운동이 가졌던 한계, 아쉬운 점들. 반성하고 그 속에서 다시 새로운 운동을 꿈꾸는 페미니스트들을 보며 그녀들의 역사처럼 우리들만의 역사를 그려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피움 톡톡에서는 꽤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론적인 부분부터 현재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까지, 여성주의에 대한 발전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속에서 한국판 ‘페미니스트에게 듣다’ 제작을 꿈꾸어 본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황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