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할머니 배구단] 나의 할머니에게 바치는 영화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2:22

 

나의 할머니에게 바치는 영화

다큐멘터리 <할머니 배구단> -

 

 

 

나이가 든다는 것의 두려움

 

알츠하이머로 기력을 잃고 쇼파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적이 있다.
항상 손도 크고 마음도 넉넉하여 많은 사람들을 돕고 사신 나의 외할머니. 이젠 병으로 몸조차 혼자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자신을 한탄하다 언젠가부터 말을 잊으셨다. 움직임도, 기억도 점점 멈춰가는 할머니를 보며 나이듦에 대해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짙은 주름 뒤에 자리잡은 깊은 눈을 보고있자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그것을 내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막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추석이라 요양원이 쉬는 관계로 요 며칠 우리집에 계셨던 할머니는, 밥도 화장실도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항상 누군가 옆에서 먹여주고 치워주고 이야기를 걸어야 했다. 우리를 보듬던 할머니는 돌봄의 대상이 되었고, 본인은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점점 애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서러움은 커져갔다.

 

늙음과 유머, 노화와 모험, 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모두 모인 영화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에는 우리 할머니는 갖지 못한 노년의 싱그러움이 있었다. 가장 어린 사람이 66세라는, 믿지못할 실화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한건 노년의 여성을 바라보는 ’불쌍함‘, ’돌봄의 대상‘.자립적이지 못한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낙천주의자라는 영화의 이름처럼, 영화 속 여인들은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 배경이 바로 ’배구‘라는 스포츠 였다.


나 67살이 처음이야

 

그들은 안다. 자신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같은 팀에서 함께 운동을 하던 여인들이 암으로, 치매로 하나둘씩 사라질때도 그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다들 지는 걸 못 참아서 세상 뜨는거야”라며 오히려 유머를 통해 죽은 이들을 추억한다. 늙어가는 자신을 부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순리를 인정한다. 이 장면은 나이듦을 맹목적으로 두려워하는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죽음을, 나이듦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늙은이에게 싱그러움을 앗아갔는가.
나이든 사람을 '올드 피플(old people)'이라고 한다. 지난 해는 '올드 이어(old year)'라 표기하는 걸 보면 '올드(old)는 때를 지난 것, 과거로 통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막 새해를 맞이한 영화속 여인은 지난해 달력을 찢으며 말한다. “지난 해를 버리는거야. 작년이지. 새해는 치과 검진으로 시작하는데, 참 기대돼. 올해는 무슨 일이 있을지.”

 

이 장면을 보면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삶에 무기력 할 것 같은,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을 것 같은 나이든 할머니(old people)가, 내일을,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고 있었다. 노인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았기에 모든 것이 지겨울 것이라고, 또 그래서 싱그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라고 말했던 <꽃보다 누나>의 윤여정의 말이 생각난다. 아차, 그녀들도 처음 사는 인생, 새로 맞이하는 내일이었다. 근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서 ‘청춘’이라는 단어를 빼앗고 사회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나이들면 은퇴하고 조용히 중심에서 사라지는 것,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순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할머니들이 모여 배구를 하고, 또 배구를 위해 운동을 한다. 그리고 외다리로 균형잡기를 하며, 할머니에겐 (운동은) 어렵다고 쑥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실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도 말한다.  98세 ‘고로’ 할머니는  “다들 내가 함께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라며 운동을 참여하는 것 자체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우리 할머니에게 능동적인 삶의 즐거움을 빼앗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할머니니까, 나이가 들었으니까 못할 거야, 이런 건 젊은 사람들이 하는거야’ 라면서. 그리고 노인들을 점차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작 세상과 단절된다.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은 버거워하면서.

 


ⓒ 방송 <꽃보다 누나>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름다운 순간

 

빤히, 아주 깊은 눈으로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막 잠에 들려고 했던 나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몰려왔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는 영화 ‘은교’의 한 대사처럼, 할머니는 자신의 늙음에 서러워했고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그런 나는 집이 답답하다며 밖에 구경을 시켜달라던 할머니의 손짓을 모른 척 했었다. 나이듦이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할머니의 깊은 눈이 생각났다. 할머니들이 배구공을 튕기며 코트를 뛰어다니고, 비키니를 입고 다같이 물놀이를 하며, 또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는, 따듯했던 해변의 한 장면.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건강한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우리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진 건 왜였을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찬란하게 아름다운 그 순간에.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황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