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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주님] 학교폭력 그리고 성폭력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2:29

 

학교폭력 그리고 성폭력

<우리 공주님> -

 

8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우리 공주님> 

 

택시 기사 순철, 한 학생을 태우다

 

이혼한 택시 기사인 순철이 딸을 혼자 키우는데 늦은 밤에 근무하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함께 보내지 못한다. 어느 날 한 고등학교 여학생이 순철의 택시에 탄다. 무례한 말투와 욕설로 순수한 소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정반대다. 그런데 순철은 학생이 전화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떠한 폭행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하게 된다. 주제도 제목도 유사한 <한공주> (이수진, 2014년)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이 영화는 피해자의 묘사보다 가해자를 묘사하는 영화다.

 

젊음의 잔인성, 학교 폭력, 성에 대한 '이중기준'


천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는 속담처럼, 영화를 잘 제작될 때 몇 분 안에서도, 몇 프레임 안에서도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상영시간 16분밖에 안 되는 단변 영화인데도 <우리 공주님>은 젊음의 잔인성, 학교 폭력,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인 이중기준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극영화로서 허구이라면서도 현실적일 만큼 좋은 영화는 우리의 실사회를 고려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공주님>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교육과학기술부 연구 발표에 따르면 5년간 (2006년-2010년) (각주1)  초중고생 735명이나 자살했으며 이중에 8명이 학교폭력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의 소수이자만 매년 한두 명이 학교폭력에 당해서 목숨을 끊기로 한다는 의미다. (13.9% ‘염세비관’이라는 이유로 발견됐는데 이 중에 학교폭력은 이런 태도와 관련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조사에 학교폭력의 모두 피해자 중에 70%가 자살 충동을 경험함이 발견됐다.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몇 특징들


순철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러한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데 성적이 감자기 떨어지는, 못된 친구와 다니기 시작하는 자기 딸에 대하여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 젊은 여학생이 탄다. 폭언이나 싸움보다도 완전히 심각한 폭력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순철이 알게 된다. 그 여학생이 몇 남자와 함께 누군가를 집단 성폭행을 하면서 동영상을 촬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계획을 세운다.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잔인해 보이지만 유사한 사건들이 실제적으로 계속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사회의 몇 특징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선 여성가족부의 조사 발표는 학교폭력 사건 중에 반 정도(2010년 43.5%, 2012년 51.8%) (각주2) 는  특별한 이유가 없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아무리 이유가 없는데도 (<우리 공주님>에서 여학생이 피해자에게 느끼는 혐오감과 사악한 성폭행을 준비하는 이유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 폭력의 형태로부터 우리 사회의 특징을 몇 개 볼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에게 부끄러움과 2차 폭력을 유발하는 것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충격적이고 트라우마 남기는 경험인데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피해자에게 부끄러움과 2차 폭력을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다른 학생이 여성 피해자를 피해자로 보는 게 아니라 창피해야 할 존재, 망가진 놀릴만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인 남학생도 동영상에 나오고, 운영한 여학생도 있는데 다른 학생이 그들에게 책임을 지고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에 비난당하는 사람은 바로 피해자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성에 대한 여성이 순결을 무조건 지켜야 되는 이중기준이기 때문에 발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여성도 남성도 합의한 자발적인 성행위는 부끄러울 이유가 없는데 우리 사회에서 강요당한 성폭행이더라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여성이 더러워진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가장 끔찍하고 심각하지만 이 이중기준이 기본적으로 불륜, 성매매, 그리고 단순한 성적인 표현까지도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이면 성욕이 있다는 말만이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로 취급하면서도 남성에게 이런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성폭력인 경우 여성의 성욕, 여성의 선택이 아닌데도 사회의 반응이 유사한 기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중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공주님>의 줄거리가 가능하다. <우리 공주님>이 묘사하는 폭력의 형태 중 하나는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2차 폭력을 유발한다.

 

미국 슈투빈빌의 유사한 사건 


이러한 사건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2012년에 미국에 위치한 슈투빈빌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여성이 두 명한테서 강간 당하다가 그때의 사진이 유포되었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미식축구 선수인 것과 작은 마을의 정치로 인해 신고 후 일주일이나 지나고 나서야 용의자들이 체포되었다. 결국 사건이 전국 이슈로 확대되어서 가해자들이 고발되었다. 작년에 재판은 유죄로 판결을 내렸음에 불구하고 매체에서 남성, 즉 가해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이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가해자를 피해자로 취급했다. 대학교에서 성폭행을 숨기려고 하는 많은 유사한 사건들을 보고 ‘성폭행 허가하는 문화’ 존재한다는 의견도 많다. 뿐만 아니라 2012년도에 오드리 포트, 2013년도에 레테 파손스, 성폭행에 당하는 동영상이 유포된 후 다른 학생들로부터 학교폭력, 사이버폭력에 시달려서 결국 자살을 선택한 여고생. 한 명이라도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인데 지속적으로, 여러 번 발생하는 일이면 문화 속의 문제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공주님>은 또 하나의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폭력을 말할 때, 여성의 육체를 지배하기 위해서, 혹은 무조건적으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남성 가해자가 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공주님>에서는 남자들이 실제적으로 성폭행을 할 것이지만 여학생 승객이 그 폭력의 주관자이다. 이 남자들이 죄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성폭력을 실행하는 주체는 여학생이며 남성은 여성에게 폭력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그들의 신체는 여성의 무기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남성들은 서사를 위해 존재한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동의를 알 수 없으며 줄거리가 진행되도록 서사 기능일 뿐이다. (당연히 남자들은 악의 없는 상황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성폭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도구라는 말은 주체성이 상실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여학생이 성폭행 음모를 주도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이거나 믿음직한지 조금 의심스러울 수 있으나 순수한 소녀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여성-피해자/남성-가해자 이분법적 논리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그녀의 내면 세계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이타적이고 희생하는 아버지께 고맙지 못한 딸, 폭력적이고 잔인한 여학생, <우리 공주님>에서는 공주가 없다. 택시 기사의 입장에서 촬영했으나 젊은 여고생이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서사를 지도하고 사악한데도 능동적으로 행동하면서 기사는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카메라가 관찰하는 순철과 동일시되면서 여학생이 타자화된다. 그녀의 생각과 동의를 모르기에 그녀의 내면 세계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신비롭고 무서운, 젊은이의 잔인성을 대표하는 괴물이 돼버린다. 그러므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젊은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스크린을 위해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촬영된 청춘영화에서 봤듯이 거의 모든 세대는 이러한 불안을 느낀다.) 결국 청소년의 묘사는 <한공주>에 비해 <나쁜 영화> (장선우, 1997년) 더 가깝다. <우리 공주님>은 성폭력, 학교폭력, 사회의 이중기준의 문제점을 투영하면서 아이보다 더 잔인한 존재가 없다는 두려움을 형상화하는 영화다.

 

[1]임주영 <5년간 초중고생 735 자살대책 효과 의문> 연합뉴스 2011 12 26

[2]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과, 2014 청소년 통계20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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