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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등급] 미모강권사회에서 “렛미아웃”을 외치다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3. 18:55

 

미모강권사회에서 “렛미아웃”을 외치다

 <외모등급> -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989년 개봉한 후부터 최근까지, 높은 성적을 강요하는 이 사회를 향해 청춘들은 이렇게 외쳤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른 대사가 필요한 듯 하다. 그리고 영화 ‘외모 등급’이 그 대사를 더 억울하고 절규 섞인 어조로 말한다. “행복은 외모 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외모 등급이 내신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영화 속 유림의 짝꿍이 유림에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유림은 단호한 말과 표정으로 시간이 없다며 거절한다. 성적 1등 다운 태도다. 얼굴 또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부만 할 것 같은’ 인상이다. 이와 극명히 대비되는 예쁜 얼굴의 2등 민화는 이런 유림을 질투한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공부 좀 살살해” 라는 민화의 대사에는 열등감이 가득하다. 이 영화의 초반은 1등과 이를 시기하는 2등의 경쟁심을 다루는 여느 학교물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주인공 유림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바로 ‘외모등급제.’ 얼굴, 몸매, 위생 영역에서의 외모 등급이 내신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중간고사 1등의 성적을 받은 그 날, 유림이 받은 외모성적은 6등급. 유림은 기분 나빠하며 외모등급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가에서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지 못하도록 피한다. 그럼에도 성적표는 발송되었고 외모등급은 계속 떨어져 마침내 ‘관리대상’ 등급을 받게 된다. 민화와 친구들은 낮은 외모등급을 받은 ‘못생긴’ 유림을 약 올리고 조롱한다. 이들의 시비는 계속되어 결국 싸움으로 번지며 유림은 쌓아두었던 화를 터트린다. 그녀의 분노가 표출되는 동시에, 그토록 알고자 했던 외모등급제 관찰 방법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 

 

대입 전형은 계속 바뀌어 왔다. 내신, 논술, 입학사정관제, 수능, 대외활동 등 시기에 따라 교육에서 강조한 것들이 변해왔다. 하지만 ‘외모’라는 평가 기준은 유례 없으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다소 얼토당토않아 보인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감독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느꼈다. 소재가 재미있지만 현실과 동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곱씹어보고, 다시금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이 영화가 지극히 현실적임을 깨달았다. 이미 면접이나 취업에서는 외모가 일정부분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은 단지 이런 사회 현실을 고등학교, 그리고 대입에 가져왔을 뿐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현실에 대한 암시이자 경고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이렇게 될 수 있는 위험한 사회라는 것을.

 

“여자는 예뻐야 해”

 

이러한 경계 메시지가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외모에 대한 중요성이 특별히 여성에게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외모등급제가 시행되어 큰 타격을 받은 학생을 여학생으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여학생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도 아니고, 여학생간의 외모 경쟁이 더 재미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외모 기준이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런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남자는 잘생겨야 해”라는 말보다 “여자는 예뻐야 해” 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듣지 않은가. 남성 아나운서는 통통하기도 하고 잘생기지 않은 사람도 많은 편이지만, 여성 아나운서들은 다 날씬하고 예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그만큼 여성에게 “예뻐야 함”을 강조한다. 강조를 넘어, 미모를 강권하는 수준이다.

 

 ‘렛미인(let 美人)’을 아시나요?

 

케이블 프로그램 중 ‘렛미인(let 美人)’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외모콤플렉스로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성형과 시술 등으로 새로운 인생을 선물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혹자는 여성들의 외모 변화에 놀라워하고, 혹자는 그렇게 예뻐진 여성들을 부러워하며, 혹자는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이 프로그램을 칭송한다. 어느새 여성은 예뻐야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지려면 예뻐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행복이 외모 순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미모강권사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미모강권사회에 불리한 사람, 미모강권사회에 유리한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에 속할까? ‘유림’과 ‘민화’ 중 어디에 가까울까? 그 정답은 바로 영화 속에 있다. 영화에서 유림이 외모등급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헤치는 동안,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외모등급제에 맞추어 변하고 있었다. 교실에서 남학생들은 푸쉬업을 하며 몸을 가꾸고 있고, 학생들은 성형외과 전단지와 문자를 받게 되었으며, 유림의 짝꿍은 쌍커풀 수술을 받는다. 수업시간에 여학생들은 화장을 하며 얼굴을 가꾸고, 얼굴, 몸매, 위생 모든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민화에게 좋은 화장품을 물어본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은 “보여지는 게 다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며 유림에게 외모에 신경을 쓰자고 설득한다. 현실이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모강권사회에 불리한 사람도, 유리한 사람도 아닌 미모강권사회에 맞추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외모등급제로 힘들어하는 유림을 놀리는 민화는 과연 악역일까. “왜? 억울해? 근데 어쩌냐, 사회가 그런데. 요새 면접을 봐도 외모를 보고, 취직을 하려고 해도 좀더 예쁜 사람을 뽑아. 심지어 살인자들도 예쁜 사람만 골라 죽이더라고. 못생겼으면 살인도 못 당한다는 뜻이야. 너처럼.” 라고 말하는 민화의 대사는 잔인하다. 아니,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다. 조금의 보탬도 없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여성의 미모를 강요하는 이 잔인한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실에 맞춰 자신의 외모를 바꾸려 한다. 너도나도 예뻐지고 싶다고, 나도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렛미인(let 美 in)”을 외친다. 그 속에서 애타게 부르짖는 유림의 목소리가 더욱 흐려진다. 그리고 영화 ‘외모등급’이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렛미아웃(let 美 out)!” 아름다움을 강권하지 말라고, 미모강권사회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