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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마침내 날이 샌다/달팽이] 일상 속 놓치고 있던 폭력들을 붙잡다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3. 18:42

 

일상 속 놓치고 있던 폭력들을 붙잡다

 <집>, <마침내 날이 샌다>, 애니메이션 <달팽이> -

 

영화 <집>

 

때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만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난해함에 사로잡힌다. 이럴 때, 내가 찾아낸 답은 하나. ‘그 이면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표면을 밝혀보자.’ 이환 감독의 <집>, 한인미 감독의 <마침내 날이 샌다>, 진성민 감독의 <달팽이>의 세 편의 영화를 내리 보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어렵다’ 였다. 그래서 더욱 그 표면에 주목했다. 가끔은 이면보다 표면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니까. 그러고 나니,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왠지 모르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영화 속 드러난 폭력성 때문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부터 꽁꽁 감춰진 폭력까지. 흔히 마주한 폭력부터 조금 낯선 폭력까지.

 

폭력의 집, <집>

 

영화의 절반 이상은 욕이다. 그리고 그 욕은 전부 주인공 ‘상희’에 향해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상희에게 진정한 친구는 없다. 상희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밥을 차려주고, 같이 놀고자 하는 (비록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놀이이지만) 친구들은 상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놀고 있는 와중에도, 상희에게 욕을 하고, 때리는 행위를 일삼는다. 가장 보기 힘든 장면은, 상희가 남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짓밟히는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보다 일차적으로는 신체적으로 약자이다. 그런 점에서 한 여성을 여러 남성이 폭력을 가함으로써 신체적 우위를 뽐내는 것은 정말 거북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력성은 청소년 폭력, 왕따 문제 등과 맞물린다. 꽤 오래 전부터 10대 폭력은 우리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속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이러한 폭력에 익숙해진 듯하다. 무뎌져 버린 폭력을 영화 <집>이 상희의 이야기로 다시 꺼내어주었으니 다시금 잊지 않아야겠다.

 

소녀에게 밤은 길기만 하다, <마침내 날이 샌다>

 

 

13살 소녀 혜주에게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다. 특히 아무도 그녀에게 일러주지 않는 ‘성(性)적’ 이야기에 대해 궁금증이 가득하다. 오빠는 집에 여자친구를 데려오고 혜주를 내쫓는다. 오빠 방에서 발견한 콘돔은 13살 소녀에게 낯설기만 하다. 마침 채팅에서 만난 한 오빠와 데이트를 하지만 막상 두려움이 앞선다. 혜주의 친구는 자신의 동생이 될 아기의 초음파사진을 보여준다. 혜주 주변에는 이렇게 성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듣고, 보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알려주지도, 일러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번 데이트를 하고 도망쳐버린 날, 그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혜주를 상대로 장난전화를 한다. “어머니를 데리고 있으며 어머니를 성폭행할 것이다, 성폭행 후 어머니를 죽였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 팬티를 벗고 주방 칼을 가져와 생식기에 갖다 대어라, 신음 소리를 내어라.” 혜주는 두려움에 떨고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오빠는 그런 혜주의 행동이 재미있기만 하다. 장난전화 후 즐거워하는 웃음소리 역시 거북하기만 했다. 여성은 성적으로 약자이다. 특히 어린 여자아이는 약자일 뿐 아니라 성폭행의 주 표적이기도 하다. 점점 딸 키우기 무서워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혜주에게 세상은 그러하다. 어둡고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과 같다. 그리고 세상은 그 밤을 이겨내는 방법이나, 아침을 맞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밤 속에 갇힌 소녀에게 폭력을 가할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 느낄 수 없었던 폭력, <달팽이>

 

 

이 영화는 매니큐어 바르는 것이 취미인 두 남고생 현호와 성환이 주인공이다. 현호는 학교에 매니큐어를 바른 채로 왔지만 성환이는 반창고로 감추고 온다. 현호의 손톱을 본 일진 종필이는 현호를 ‘게이 새끼’라고 놀리며 폭력 행위를 가한다. 성환이에게도 현호에게 폭력을 가하라고 강요한다. 성환은 현호의 팬티를 벗기고 때리고 침을 뱉기까지 한다. 물론 자신도 같은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숨긴 채.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폭력적이고 잔인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주인공들의 물리적 폭력 행위를 보기 힘들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영화 <집>, <마침내 날이 샌다>와 나란히 본 마지막에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보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낳은 폭력이다. 영화 속 학생들은, 남자가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은 남자답지 않은 행동이고, 마땅히 놀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고정적 인식이 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종필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관념을 자기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요구했는지도. 이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르다고 다그치며 말이다.

 

폭력은 늘 조용히, 그리고 가까이

 

세 편의 영화 <집>, <마침내 날이 샌다>, <달팽이>는 일상 속 늘 존재하는 폭력들을 다시금 깨우치게 한다. 익숙해져 무뎌져 버린, 또는 눈에 보이지 않아 놓쳐 왔던, 조용한 폭력들을 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로, 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성적 고정관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리고 말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사소한 이유들로 우리는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짓밟혔으며 또 우리는 얼마나 침묵해왔을까.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