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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여성영웅은 미디어를 넘을 수 있을까?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3:43

 

여성영웅은 미디어를 넘을 수 있을까?

만화 속 히로인의 탄생과 오늘날의 여성상까지, <원더우먼!> -

 

두 가지 에피소드: 통념이 여성과 만날 때

 

실리콘밸리에는 공학계에 종사하는 여성 모임이 있는데, 어느 날 그녀들이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놀랍다. 아들을 둔 여성들이 “커서 공대에 진학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 아들들은 “안 간다”고 답하며 이런 이유를 붙였단다. “공대는 여자들이 가는 데 잖아!” 주변에서 접하거나 눈에 띄는 여성들이 공학자일 때, 특히 엄마가 공학자이고 엄마 친구들도 모두 공학자일 때, 소년들이 ‘공대는 여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 같다.

 

에피소드 하나 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한 강연에서 던진 퀴즈인데, 참고로 나는 못 맞췄다. 혼잡한 병원 응급실, 들것에 실려온 소년, 유능하기로 소문한 의사가 소년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 하는 말, “나는 이 소년의 수술을 맡을 수 없어요. 내 아들이거든요.” 그런데 소년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그렇다면 의사는 누구일까? 유명한 퀴즈여서 답을 아는 이들이 많겠지만,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퀴즈를 듣다 보면 ‘멘붕’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의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다가 답을 듣고 허망해진다. 의사는 소년의 엄마다.

 

미디어가 주조하는 여성상과 롤모델의 부재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는 것들은 우리의 사고를 주조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소리쳐봐도, 내 생각은 내가 통제한다고 주장해봐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우리가 자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는 대표적인 예다. 미디어는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사고를 주조하고 변형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여성상’은, 그래서, 사실 미디어가 주조한 것일 공산(公算)이 크다. ‘일하는 여성’이나 ‘성공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현격히 높아졌다 하더라도,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성들은 여전히 성공하기 위해 남성(과 남성의 힘)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원더우먼!>은 이렇게 미디어가 다루는 여성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 남성영웅이 미디어를 독점하고 있는 와중, ‘원더우먼’이라는 여성영웅의 등장은 소녀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제로 작동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어린이들이 만화 속 영웅을 갈망하는 이유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들이 ‘무력감’과 ‘불평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른들만큼, 혹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힘이 센 영웅이 찾아와 세상에 정의를 구현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소년들에게는 그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남성영웅 캐릭터들이 많았지만, 소녀들에게는 ‘원더우먼’ 이전에 존재했던 여성영웅 캐릭터는 전무했다는 것이 본 영화의 문제제기가 출발하는 지점이다.

 

사랑과 평화를 섬기는, 힘쎈 ‘원더우먼!’

 

여성영웅의 모습은 남성영웅의 그것과 다르다. 근육질 몸 위로 ‘쫄쫄이’를 입은 슈퍼맨 등의 남성영웅은 탁월하고 우월한 ‘힘’ 자체로만 적들을 무찌르지만, 역시 몸매가 잘 드러나는 수영복(?) 류의 복장을 한 원더우먼은 탁월하고 우월한 ‘힘’을 발휘하며 적을 물리치는 한편으로 굶주린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나누어준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 배고픈 어린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원더우먼이 세상을 구하러 나서는 첫 번째 이유다. 전쟁을 위한 전쟁은 원더우먼이 물리쳐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미디어 제작권의 편향, 남성:여성=97:3 (%)

 

만화 속 원더우먼의 모습은, 그러나 늘 ‘페미니스트’적인 것은 아니었다. 만화가 진행될수록 원더우먼은 남성의 품에 안겨 보호를 갈구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런 원더우먼은 진짜 원더우먼이 아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또 자신들만의 원더우먼을 주조해내면서 ‘원더우먼 정신’을 이어간다. <원더우먼!>에 등장해 발언한 어느 여성은, 미디어에서 여성상이 자꾸만 남성중심 관점에서 묘사되는 연유를 적확히 짚어낸다. 바로 언론계에서 미디어 ‘제작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절대적으로(97%) 남성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균형 잡힌 젠더 이미지가 구성될 수 있으려면,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미디어로 진출해야 한다.

 

강한 여성과 일상 속 여성영웅들, 미디어 넘어

 

강한 여성의 상징인 원더우먼은,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는 남성적 욕망의 구도에서 아직 완전하게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 제작권을 공평하게 나눠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미디어 넘어 ‘그 무엇’을 시도해야만 족쇄 같은 구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영웅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적인 강인함의 발현을 현실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일일 것이다. 마치, <원더우먼!> 후반부, 별무늬 치마와 은색 재킷을 걸친 여성이 맹인 여성이 요청하는 도움의 손길을 ‘계시’처럼 받아들여 그녀만의 ‘원더우먼’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오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