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셰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 ‘자기만의 방’으로서 감옥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3:33

 

‘자기만의 방’으로서 감옥

다큐멘터리 <셰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 -

 

 

에세이 『자기만의 방』의 시작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글쓰기가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라고 전제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은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찰하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기능이다. 울프가 언급한 ‘자기만의 방’의 기능만 한다면 그 공간은 어떤 곳이어도 상관은 없다. 그 공간은 카페일 수도, 도서관일 수도, 거리일 수도 있다. <셰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을 보다 문득 그런 질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감옥 또한 그런 공간일 수 있을까.

 

감옥에서 자신을 찾는 역설


영화 <셰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은 레바논 바브다 교도소의 여성 수감자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들은 10개월의 시간동안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치료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연극’이다. 수감자들이 자신의 사연으로 극을 만들고 이를 상연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 목표다. 서두에서 감옥 또한 ‘자기만의 방’일 수 있을까 질문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주인공들은 ‘자기에게 의미 있는 물건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답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도록 유도된다. 또 춤을 배우고 극을 구성하며 스스로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울프의 방이 마치 인큐베이터와 같은 공간이라면, 영화 속 감옥은 정확히 그런 역할을 한다.

 

오히려 감옥 안에서 더 자유롭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표현하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레바논의 암담한 여성인권 문제와 맞닿아 있다. 레바논에서는 많은 수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시달리지만, 현재까지도 가정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법조차 없는 것이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 볼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야기가 가정폭력에 관한 것이다. 한 여성이 결혼 이틀 차에 가정폭력을 겪고, 그렇게 생긴 상처를 문에 부딪쳐 난 상처라고 가족들에게 숨기는 사연은 레바논 내에서 얼마나 많은 가정폭력 사건이 은폐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난관은 여성의 발언권이 제한된 현실에서 일정 부분 기인한다. 한 인물은 초경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가 어떤 것인지 몰라 공포에 떨었다고 회고한다. 이는 레바논에서 얼마나 여성이 스스로의 경험에 대해, 심지어는 몸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지 알게 한다.

 

꾸밈없는, 하지만 감동적인 영화


사실 이 영화가 정말 훌륭한 지점은, 이야기를 ‘감옥 안 여성들의 자아 찾기’와 같은 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다, 거기에 몇몇 주인공들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재판도 받지 못하고 구금된 상황이다. 당연히 답답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주인공들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답답함에 창밖을 보고 노래를 부르다 오열하기도 한다. 감독은 주인공들이 괴로워하는 순간과 연극을 하는 순간 모두를 공평하고 담담하게 담아낸다. 섣불리 치료 프로그램만을 부각시켜 상황을 낭만화 하는 일을 저지르진 않는다. 감독은 레바논의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 주인공들이 하는 말을 충실히 듣고, 가감 없이 옮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윤리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담담한 톤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영화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오랜 시간 감옥에 있다 출소하는 한 여성은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 달리, 그녀는 정말 다른 삶을 산다. 그녀는 출소 후에도 계속해서 연극 일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가 누군지 말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이제 입을 떼기 시작한 그녀의 삶이 이전과 같으리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듯 세상과 소통하며 다른 여성들의 삶을, 레바논이라는 공간을 다르게 만들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