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그날 밤] 객관성이라는 환상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 23:28

 

객관성이라는 환상

다큐멘터리 <그날 밤> -

 

 

 

피해의 ‘현재성’, 누구의 현재성?


언젠가 형법 수업을 들었던 날,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을 설명하며 교수님이 한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든 일이 있다. 사건은 오랜 기간 동안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에 시달려 온 한 여성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성적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이른 일이다. 그 말투만큼이나 건조하게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가 성적 학대에 시달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성적 학대가 의붓아버지를 살해할 당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피해의 현재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방위는 성립하지 못한다. 끝.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 현재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개념일까. 십 년 넘게 상시적으로 성폭력에 시달려온 사람은, 말하자면 폭력에 항시적으로 노출된 이는 폭력의 영향력에 이미 노출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말하자면 교수님이 말한 ‘현재성’이란 항시적 위험이 시달려 본 적이 없는 사람, 즉 판사의 현재성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이 판결은 ‘객관성’을 갖춘 판결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영화 <그날 밤> 속 주인공들 역시 비슷한 난관에 처한 사람들이다. 영화는 뉴욕의 밤거리에서 폭력 사건에 휘말린 흑인 레즈비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한 남성이 주인공 무리들에게 성희롱을 하고 이들이 레즈비언임을 알게 된 뒤 혐오발언과 폭력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주인공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격하고, 이 와중에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고자 무리 중 한 여성이 남성을 칼로 찌르게 된다. 당연히 정당방위로 끝날 법 하지만, 사건은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검사는 주인공들이 공격당한 사실은 배제한 채, 이들을 흉악 범죄인 ‘조직 폭력’으로 기소한다. 거기에 판사 또한 주인공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언론은 이들을 ‘레즈비언 살인마 조직’으로 몰아세우며, 마치 이들이 이성애자 혐오에 휩싸여 한 선량한 남성을 조직적 폭행한 것처럼 몰아세운다.

 

법과 언론은 진정 객관적인가


우리는 흔히 법과 언론을 객관성의 상징처럼 여긴다. <그날 밤>은 이러한 통념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영화다. 검사와 판사는 흑인과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에 휩싸여, 주인공들이 심각한 혐오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사실은 외면한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인과를 전달해야할 매체들은 오직 주인공들이 인종과 성정지향만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기존의 유색인종과 여성 성소수자에 씌워진 편견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 한다.

사실 법과 언론이 두 사실에만 주목하는 것은, 이들에게 흑인과 레즈비언이 어떤 대상인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에게 흑인‧레즈비언은 미지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즉, 주인공들은 강하게 ‘타자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잡한 사건 앞에서 법과 언론은 인종과 성적지향, 단 두 요소 밖에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체성 아래에서 이들을 ‘타자’로 보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대척점에 서 있는 백인‧이성애자‧남성 정체성 아래에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심문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건에 대한 판결과 보도가 백인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며 남성중심적인 것이 아니냐고. 나아가 법과 언론이 결코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기반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이 같은 타자화는 언론이 주인공들을 승냥이 떼에 비유하며 최고조에 달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흔히 동물의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가. 한때, 여성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은 어느 자리에 서 있었나요


시간이 흐르고, 주인공들은 싸움 끝에 판결에서 고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만, 칼을 소지했던 주인공만큼은 가장 오랜 수감생활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녀가 칼을 소지한 것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녀는 범죄가 만연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경찰들에 의해 남매 중 한 사람을 억울하게 잃은 일이 있다. 위험은 도처에 있고 공권력은 믿을 수가 없다. 그런 조건 아래에서 과연 그녀가 칼을 지니고 있었다고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물론 법도 언론도 그녀가 무기를 소지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그런 판단을 내릴 때, 당신들은 어떤 위치에 서 있었는가. 누구의 시점으로 바라보았는가. 그녀가 칼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고 할 때, 그것은 누구의 일상을 기반으로 한 판단인가. 과연 법과 언론은 객관적인가. 혹은 객관적이라는 것이 가능은 할까?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