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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별자리] 평범한, 그래서 더 특별한 댄서들의 이야기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3. 18:49

 

평범한, 그래서 더 특별한 댄서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춤추는 별자리> -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장애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고, ‘장애우’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모두 친구라고 낮춰 부르는 말이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래서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대부분 이렇게 배웠을 것이다. 이것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배려한다고 느낀다. 필자 역시도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가장 올바른 표현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평상시에도 그들에게 어떠한 차별이나 편견 없이 대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장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날카로운 한마디를 부딪히는 영화, <춤추는 별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영화 주인공들의 ‘춤’에 담겨있다. 단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까지 단지 36분이면 충분하다.   

 

이 영화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결성된 ‘아이댄스(iDance)’라는 댄스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모두 다른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각기 다른 이유에서 춤을 시작한 사람들.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합창을 하거나 수화 공연을 하거나 그림이나 사진 등 미술작품을 만들어낸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알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춤은 ‘몸으로 하는 예술’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체 일부가 없거나,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추는 춤은 불편한 몸짓에 지나지 않을까? 영화의 중반부까지만 해도, 이들의 작품에 큰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온 이들의 실제 공연 영상은 ‘내가 이렇게 멋있는 공연을 본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휠체어에 탄 사람, 하반신이 없어 바닥에 주저 앉은 사람 등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춤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무대를 보니 가슴이 벅찼다. 영화를 보고 나니, 먹먹한 감동과 함께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장애란 무엇인가


아니, “장애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맞을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한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이 어디 있나요? 장애가 있는 사회가 있을 뿐이죠.” 라고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한 말이다. 아이댄스 팀의 사람들에게 신체적 결함은 장애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신체적 불편함이 아니라 여성이나 인종 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장애에는 어떠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춤’으로 증명해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장애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춤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춤이란


아이댄스 팀에게 과연 춤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보여주는 춤에 주목하여 I, D, A, N, C, E의 6가지 의미를 찾아보았다.

Independence. 그들은 ‘신체가 멀쩡했으면, 나도 정상인이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독립적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춤이 그렇다. 휠체어를 탄 모습 그대로, 몸이 불편한 모습 그대로를 춤으로써 표현한다. 그들에게 춤이란 신체적 장애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Diversity. 그들의 공연 중, 얽혀있는 검은 리본 사이를 각자 어떻게 빠져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춤을 추게 되면서,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서로의 차이를 포용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아이댄스'라는 공동체 내에서 차이는 존재하지만,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춤이란 다양성을 배우게 된 계기이며 그 다양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Art. 그들은 예술분야에 있어서 장애를 가진 것이 한계가 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들에게 가장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을 넘어 예술 그 이상으로 표현했다. 하고 싶었던 말을 춤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Normality. 그들에게 춤은 장애와 비장애의 범주가 존재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무대 위 그들은 춤을 추는 장애인이 아니다. 춤추는 무용수일 뿐이다. 평범한, 그래서 더 특별한 무용수들이다.


Company. 춤은 그들의 동반자이다. 함께 춤추는 동료들은 소중한 동반자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며, 상호 돌봄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공통분모는 장애가 아닌, ‘춤’이다. 춤을 중심으로 그들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Escape. 장애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춤은 그들 스스로에게 탈출구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장애인이 어디있느냐, 장애가 있는 사회가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한 메시지와 같이, 경계를 가진 지금의 사회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확실한 답을 준다. 이 사회에는 장애자, 장애우는 당연히 없으며, ‘장애인’도 없다. 모두 인생에 어려움을 안고 산다.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사람만이 장애인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idance’ 댄서들의 인생은 매 순간이 도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들이 춤을 추는 이유는, 특별한 대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동정을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너희가 하는 것, 우리도 할 수 있어!” 라는 열등감도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댄스(iDance)'라는 팀 이름처럼 그저 그들은 “나 춤을 춰” 라는 이유에서다. 예술 분야에 있어서 장애가 한계가 되지 않음을 그들이 보여주었다. 이제, 예술 분야를 넘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들을 인정하고 똑같이 바라봐 줄 차례다. 평범한, 그래서 더 특별한 무용수들이 수 놓은 별자리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