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달팽이] 우리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4. 10:25

 

우리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달팽이> -

 

올해 4월 개봉해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영화 <한공주>를 나는 얼마 전에야 보았다. 대학 입학 후부터 <한공주>의 주인공인 천우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녀의 연기가 궁금했고,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는 단 한 마디의 말만 써 있는 포스터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 속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마주한 진실은 처참했다. 

 

애니메이션 <달팽이>를 만나다

 

영화 <도가니>처럼 폭력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아왔는데, 구체적인 사건의 과정과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사건이 종결된 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어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애니메이션 <달팽이>


애니메이션 <달팽이>는 고등학생인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이 취미인 성환이에게 현호가 ‘학교에 바르고 가자’라고 제안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단순한 줄거리로 보이지만, 22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독은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청소년을 다루는 영화는 왜 ‘학교 폭력’만을 다루는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사회의 면모를 발견한다.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단순히 교과 내용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권위, 예절, 사회성 등을 배운다. 애니메이션 <달팽이>속에는 이런 사회의 모습들이 부정적으로 변형된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학교를 다루는 대부분의 청소년 영화들이 그렇듯이, 단골 주제로 ‘학교 폭력’이 등장한다. 학교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학교에 관한 문제로서 항상 등장하는 문제이며, 실제 학생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에는 단순한 물리적 폭력을 넘어 성희롱, 언어 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들도 학교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곤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학교의 문제들을 짧지만 그 안에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달팽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는 소위 학급의 일진인 종필이 현호를 ‘게이’라고 조롱하고 괴롭히는 내용이다. 종필이 현호를 괴롭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아주 얼굴에 화장도 하고 오지?’ 등의 말로 그를 비난하거나 자신이 직접 빨간색 펜으로 입술 화장을 해주며 그에게 침을 뱉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달팽이> : 성환이와 종필이는 단짝 친구이다


진부한 갈등을 신선한 퍼포먼스로 마무리하다


하지만 <달팽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종필이 현호를 괴롭히는 장면들의 조합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환이와 현호의 암묵적인 대립이다. 둘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이다. 하지만 이 둘의 갈등은 학교에 현호만 매니큐어를 칠하고 가면서 발생한다. 현호가 매니큐어를 바르고 가자고 했지만 성환이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이를 지운다. 이 때문에 현호가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급기야는 아이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환이를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반발했다간 자신도 따돌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의 갈등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해소된다. 그 전의 장면을 통해서 현호가 성환이의 사과를 받아주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뮤지컬 ‘헤드윅’이 생각나며 그들의 묵었던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연출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두 사람이 ‘대화’나 ‘싸움’ 등의 방법으로 직접적으로 화해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게이’라고 놀림 받던 현호를 위로해주기 위한 성환이의 노력 이였다.


 
 애니메이션 <달팽이> :  왜 우리는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는가

 

‘다름’을 인정받는 사회


이 애니메이션의 중요 사건은 현호가 종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성환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매니큐어’ 때문이다.

성환이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이 취미인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 취미는 괴상하고 남자답지 못하다. 이때, 우리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맞추어 나의 행동이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분홍색’과 같이 우리나라는 ‘성’의 문제에 관해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나 편견들이 많다. 하지만 성환이는 이를 매니큐어를 바름으로써 깨버렸다. 그렇다고 성환이가 기존 질서에 대해 불만이 많다거나 의문을 품을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다.

 

남자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게이’라고 놀리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한 언어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남자들은 ‘게이’라고 놀림 받으면 그 점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곤 하는데, 이를 듣는 진짜 그들을 생각해야 한다. 성소수자들은 '다른' 것일 뿐, 틀리진 않기 때문이다. 이 ‘다르다’는 기준 또한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이렇게 <달팽이>는 단순히 보면 ‘학교 폭력’이라는 매우 흔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 사회의 문제들을 담고 있고 그러한 문제들이 가장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깊숙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남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