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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데] 나는 성공할거에요, 존경하는 아인슈타인 선생님처럼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6. 15:29

 

나는 성공할거에요, 존경하는 아인슈타인 선생님처럼

 다큐멘터리 <세피데>  -

 


“연못에 사는 물고기는 연못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바다를 꿈꾸지 않는 다른 물고기들과의 삶이 고통일 뿐이다"

이야기는 이란의 마을 파스 사아닷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녀, 세피데 후샤르에게서 시작된다. 셰피데는 마을의 선생님 카비리가 이끄는 천문학동아리의 열성 멤버인데, 또래의 여자애들답지 않게 일찍부터 ‘천문학’과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언젠가 존경하는 이란의 여성 우주인 아누셰흐 안사리처럼 되기 위해, 그녀는 2500년 전 부서진 키루스 대왕의 무덤을 탐색한다. 그곳에서 별의 운행을 관찰했을 옛 사람들을 상상하고, 대화하며, 셰피데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뉴턴, 케플러 아인슈타인에 지지 않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자신의 미래를 그린다.

 

<셰피데>는 베릿 매드슨이 감독하여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셰피데가 열여섯에서 열여덟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의 꿈을 좇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열 여섯의 셰피데는 열정이 넘치고 조금은 수줍은 학생이다. 셰피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를 위해 위대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커다란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천체들을 들여다보며, 셰피데는 아무런 대답도, 답장도 주지 않는 아인슈타인 선생님에게 자꾸만 편지를 쓴다. 셰피데의 학교에서는 어두운 히잡을 두른 여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카비리 선생님의 우주 이야기를 경청하곤 하지만, 천문학 동아리에까지 들어 활동하고, 대학에 갈 꿈을 품고 있는 여자아이는 셰피데뿐이다.
 
셰피데의 지칠 줄 모르는 꿈 찾기 여정은 그녀의 가족에게는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저녁에 밤하늘을 관찰하기 위해 집을 나서야만 한다. 하지만 십대 후반의 어린 여자아이가 밤늦게 밖으로 나가겠다는 걸 삼촌과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일이라고 생기면 어쩌려고?” “신이 그 일을 위해 너를 선택하신 것 같니?” 셰피데의 꿈 찾기를 가로막는 장애는 그녀의 성별뿐만이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건 셰피데의 꿈을 향한 열정 뿐 아니라, 메마른 우물과 더는 곡식이 자라지 않는 땅이기도 하다. 천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카라즈미 아카데미의 장학생이 되기 위한 셰피데의 첫 번째 시도는 키루스 대왕의 무덤에 대한 그녀의 논문이 거절당하며 실패하고 만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별다른 감정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실제 인물의 일상사를 가정용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는 것처럼 셰피데의 종적을 따라가기만 한다. 셰피데의 경제적 어려움, 여성이기에 받는 사회적 차별 역시 특별히 부각하지 않는다. 여성 우주인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삼촌을 설득해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항변하는 셰피데의 표정이 그대로 화면 안을 메울 뿐이다. 오히려 영화의 대부분은 셰피데가 얼마나 우주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아누셰흐 안사리처럼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또 자랑스럽게 해드리고 싶은 셰피데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어리지만 결심이 굳은 얼굴로, 셰피데는 밤하늘의 천체를 관찰하고 키루스 대왕의 유적을 탐사한다. 그녀는 새로운 망원경의 지원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거나 아누셰흐 안사리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등,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노력을 차근차근 해 나간다. 이 영화는 셰피데라는 여성이 2년동안 꿈을 키우고, 성장해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학으로 물리학 공부를 하러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셰피데가 여성이기에 직면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셰피데의 노력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투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다만 셰피데라는 한 어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말,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한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꿈에만 몰두하는 가운데 마침내 성공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줄 뿐이다.

 

“우주를 모른다는 건, 방에 갇힌 것과 같아요. 벽이 있다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모르는 거잖아요.” “누구는 키루스의 무덤이 메카를 향하고 있다고 해요. 제 생각엔 그곳이 하늘을 관찰하는 장소로 사용된 게 분명해요!” 꿈을 좇는 셰피데에게는 그녀를 응원하는 든든한 조력자들 역시 있다. 어릴 때부터 꿈을 키워준 카비리 선생님과, 함께 천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셰피데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남학생이 그들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걱정하면서도 셰피데가 장학금을 받지 못해 카라즈미 아카데미로 진학하지 못하는 걸 안쓰러워하는 셰피데의 어머니 역시 숨은 조력자이다. 다소 가부장적인 셰피데의 삼촌 역시, 그녀가 청혼을 받자 셰피데처럼 남다른 아이를 쉽게 넘겨줄 수는 없다고 분개한다. 셰피데의 꿈을 향한 여정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사실 그녀가 행복하기를, 그녀가 꿈꾸는 것처럼 꼭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선생님과 가족, 친구들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조금은 비현실적일 만큼 따뜻하고 상냥하게 셰피데라는 여성의 꿈 찾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신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