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뷰어

[세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 희극으로 나아가는 긴 터널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한국여성의전화 2014. 10. 17. 11:56

 

희극으로 나아가는 긴 터널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감옥에서 펼쳐진 연극, <세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 -

 

 

모두 다른 사연과 이야기를 지닌 여성들

 

참으로 희극은 어려운 것이다. 비극을 넘어서야만 희극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슬픔과 절망이 없다면, 희극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터널의 그 끝이 보이고, 저 멀리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에라자드, 감옥 안의 여자들>은 이렇듯, 모두 다른 사연과 이야기를 지닌 여성들이 모인 감옥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죄목으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그녀들은 연극을 통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그녀들의 연극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카메라는 놓여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침묵을 깬,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두려움과 공포, 슬픔과 절망...


그녀들의 모습은 소위 범죄자라고 그려지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감옥이라는 공간과는 상관없이, 자유롭고 유쾌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깊은 속내엔 두려움과 공포, 슬픔과 절망이 묻혀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풍기는 그녀들의 삶은 쓰디쓴 향은, 스크린 너머에 있는 관객에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들이 어렵사리 꺼낸 자신들의 이야기에는 온갖 상처들이 존재한다. 레바논이라는 국가가 가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인해 그 상처들은 시작되었거나, 혹은 더욱 곪아 터지게 만들었다. 억압을 받아드리며 침묵하거나, 혹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예외의 대상으로, 부정한 시선의 대상으로 되거나. 그녀들을 둘러싼 사회와 세상은, 그녀들을 감옥으로 밀어 넣었다. 물론, 죄를 지어 감옥에 간 것은 맞지만, 어쩌면, 그녀들이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규범과 제도, 시선이 만들어 낸, 하나의 비극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그녀들의 사적인 역사가 이 사회와 세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 정치적인 역학을 몸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녀들, 자신들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구조와 규범에 억압되어, 자신을 잃은 채 침묵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것인가.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 앞에서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담보로 과감한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범죄자로 낙인 찍힌 그녀들의 목소리,

변장하지 않은 날것으로 무대에 울려퍼지다


감옥 안에서 펼쳐지는 연극치료는 10개월 이라는 시간이 걸려 이루어진다. 그 시간을 스크린 속에 모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펼쳐진 무대는 꽤나 화려했다. 그녀들이 변한 모습은 아름다웠다. 관객 앞에 당당하고,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각각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내뱉는 대사들은, 그녀들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변장을 한 채로, 연극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그녀들은 사실, 변장하지 않은, 더 나아가 자신 그 자체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감옥 속에 그녀들이야말로, 스스로를 감추고, 은폐시킨 그녀들이 아니었을까. 범죄자로 낙인 찍힌 그녀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크게 얘기해봤자 공기 중에서 흩어지는 먼지와도 같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배역의 힘을 가지고,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낸다. 이때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연극은, 슬픔과 절망의 다리를 건너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들의 비극을 느낄 수 있다. 즐거움과 삶의 저편의 웃음이 극 속에 묻어있고, 감옥 안의 그녀들의 일상 속에 묻어있지만, 그 안에는 진득한 어둠이 바닥을 채우고 있다. 아직, 그녀들은 희극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펼쳐진 연극에서든, 그녀들 각각의 삶에서든. 하지만, 자신들의 삶에 엉켜있는 비극들을 말로서 표현하고,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녀들은 삶과 세상에 웃음을 보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영화의 끝은 그다지 환하지 않아도, 어둠의 끝에서 보이는 빛으로 일렁인다.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뷰어 유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