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녀들은 왜 교황청과 싸웠는가?

[2015 제9회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④] <주님은 페미니스트>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영화제입니다. '고백의 방향'을 주제로 한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 어떤 이야기,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극장에서 19개국 29편의 영화로 만나게 될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기자 말


* 필자 이미영은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컷



지난 2015년 4월 16일,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교황청과 미국 여성수도자 대표기구인 여성수도자지도자회의(Leadership Conference of Women Religious, 이하 LCWR)가 싸움을 끝내고 화해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 아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은 그 기사가 무슨 의미인지는커녕 그동안 미국 여성 수도자들이 교황청이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관심 있게 본 이는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 그리고 몇몇 가톨릭 여성신학이나 여성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초청작 <주님은 페미니스트(Radical Grace)>는 ‘버스를 탄 수녀들(Nuns on the bus)’이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세 수녀, 시몬(Simone Campbell), 진(Jean Hughes), 크리스(Chris Schenk)의 활동을 통해 이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미국 여성 수도자들은 왜 조사를 받았는가?


2009년, 교황청은 미국 여성 수도회의 70~80% 정도가 가입한 대표기구인 LCWR이 심각한 교리적 일탈 등을 보인다는 미국 내외 여러 주교들의 고발에 따라 조사를 시작하였다. 고발자들은 미국 수녀들이 동성애와 피임, 낙태, 여성사제 운동 등 가톨릭교회에서 금지하는 교리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다며, 이들의 수도 생활이 가톨릭 신앙과 어울리지 않고 교도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4년여에 걸친 조사 이후, 교황청은 2012년부터 미국 주교 3명을 임명해 최대 5년에 걸쳐 LCWR의 전면 개조를 진행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미국 수녀들에 대한 교황청 조사와 제재가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당시 미국 주교회의는 이 법안이 피임과 낙태를 조장하는 법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고, LCWR은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개혁법을 지지하며 주교단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주교단의 결정이 교회의 공식 입장인 가톨릭교회의 제도 안에서, 교도권을 지닌 주교회의와 ‘다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냈다는 것은 제도로서는 크게 위협을 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 수녀들은 주교단과 다른 선택을 했을까? 



수도복을 벗고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간 수녀들


영화는 그 이유를 버스를 탄 수녀 중 한 명인 진 수녀의 활동을 통해 설명한다. 진 수녀는 수도복을 입지 않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출소하는 이들을 도우며, 성인이 되도록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 교사이기도 하다. 수도복을 입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진 수녀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특정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장벽 없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편견이나 격의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수도복을 벗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흰색이나 회색 또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두건을 쓴 수녀의 모습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수녀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평상복 차림으로 활동한다. 50년 전 폐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가 문을 열고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세상 한가운데서 섬기는 교회가 되겠다고 선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수도복을 벗은 미국의 수녀들은 목소리 없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사회의 변화를 요구했고, 존중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지난 40여 년을 미국 수녀들은 정의, 평화, 인권 활동에 앞장서 왔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강보험개혁법이 추진될 때, 교도권과의 대립을 무릅쓰고도 이 법의 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스틸컷



버스를 탄 수녀들, 세상과 교회를 움직이기 시작하다


그러나 이 일로 미국 주교회의와 부딪치면서 교황청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자, 수녀들은 당황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몸 바쳐 온 교회로부터 자신의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가톨릭교회 교리에 어긋난다고 파문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녀들은 교회의 제재에 침묵하며 따르기보다는, 이 문제의 발단이 된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에 대해 알리는 ‘버스를 탄 수녀들’ 캠페인을 시작한다. 사회정의 활동을 하던 시몬 수녀는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이 법안이 가톨릭 사회교리의 정신에 부합하다는 사실을 설득하였다. 신자나 비신자 여부를 떠나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버스를 탄 수녀들을 응원하고 격려하였고, 그동안 수녀들이 낮은 곳에서 함께 해주었듯이 교황청 조사로 위기에 처한 수녀들을 지지하며 함께하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종교 분위기 안에서 수녀들이 공공연하게 교도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 정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두고 한쪽에서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일이라며 반대하였다. 아동 성추행이라는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보다 수녀들이 하는 일이 동성애와 낙태를 조장하기에 더 나쁘다는 한 남성 반대자를 만나고 난 후, 시몬 수녀는 오랫동안 할 말을 잃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진 수녀는 평생 그리스도교 신앙에 충실하게 살아온 수녀들을 조사하는 교회,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교계제도의 현실을 보며, 현재 가톨릭교회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과연 이 제도가 옳은 것인지를.


가부장적인 종교 제도에 의문을 품다


한국 사회에서는 천주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기여한 역사와 전통 덕분에 가톨릭교회를 비교적 진보적인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 가톨릭교회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이다. 이혼, 피임, 낙태, 동성애 등 가정과 성 윤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은 세계 주요 종교 중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이다. 


크리스 수녀는 이 제도가 과연 예수의 정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질문하며,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중심지인 로마로 떠난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직분으로 봉사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크리스 수녀는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었고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은 그 정신을 올곧이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간 로마에서 새 교황의 선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삼은 첫 번째 교황의 선출은 미국 수녀들 앞에 놓인 미래에 희망의 징표로 여겨졌다. 실제로 교황청은 2014년 말, 미국 여성수도회와의 대화를 통해 귀를 기울이는 걸 배울 수 있었다며 LCWR의 입장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LCWR에 대한 미국 주교단의 조처를 마무리하도록 한 것이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주님은 페미니스트> 포스터



끝나지 않은 여정


싸움은 끝났다. 건강보험개혁법도 통과되었고, 미국 주교단의 감독도 끝났다. 그러나 수녀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가난한 이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살 것이지만, 가톨릭교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수녀들은 지난 40년 동안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서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갈 뿐 아니라, 그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 역시 평등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했다. 그것은 과격한(radical) 것이지만, 은총(grace)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실, ‘주님은 페미니스트’라는 제목보다 원제의 ‘래디컬 그레이스’가 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잘 담아낸다고 보인다. 래디컬(radical)이란 말은 ‘급진적’이란 뜻뿐만 아니라 ‘근본적’이라는 뜻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예수의 복음 정신은 결코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이들, 여성들에게 더 열린 신앙이었다. 그 근본적인 정신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현재의 교계제도에 질문을 던지고, 설득하고, 함께 바꿔나가야 할 일이라 과격하지만,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은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득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 현실을 떠올려보게 된다. 급진적인 저항은커녕 여성에 대한 이야기조차 사라진 오늘의 현실에서, 이 영화가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을까? 2015년은 가톨릭교회가 ‘봉헌생활의 해’로 보내면서, 우리 시대의 수도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 특히 여성수도자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지금 우리 시대의 수도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지, 공의회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끝>


주님은 페미니스트 Radical Grace 

레베카 패리쉬 Rebecca Parrish

2015 | Documentary | 78' | Italy, USA

09. 17. Thu. 13:20 피움 톡!톡! Fiwom Talk!Talk! 7관

09. 20. Sun. 14:00 1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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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여성인권영화제 2020년 12월 1일(화)~12월 1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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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진 루시아 2015.09.23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관심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수도자가 되려고 수련하고 있는 수련생입니다. 여성인권 차별은 카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되돌아 생각해 보았을 겁니다. 이 영화 꼭 한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