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우린 흔들리지 않지'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피움포커스

온전한 ‘나'로서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피움 2015. 9. 17. 01:51

온전한 ‘나'로서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2015 제9회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①]  픽션 다큐멘터리 <10개월> 



 글쓴이_갱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출산은 ‘나'로서의 끝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인 걸까. 친정엄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후자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소중한 이들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두려움은 늘 전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기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임신이 어려운 편에 속했고, 그 때문에 파트너와 난임 클리닉을 오가며 임신을 기다렸다. 물론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을 때 기뻤고 행복했으나, 확실히 오랜 시간 공들여 아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고 해서 임신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10개월>의 주인공인 올리비아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상황을 불안해하고 힘겨워한다고 해서 그녀가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 불안감에는 묘한 죄책감이 깃든다. 아기를 뱃속에 두고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 엄마로서 결코 느껴서는 안 되는 불경함 같았기 때문이다. 불안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나는 안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히스테릭해졌다.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거동을 극히 삼가야 하는 산모였기에, 근 두 달간을 밖에 나가지 못하면서는 점점 우울함에 빠져들었다.


그런 때에는 “아기를 위해 견뎌야지." 혹은 “지금은 아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어쩌고, 아기만?” 이라는 말이 울컥 올라왔으나, 그 말을 목구멍 밖으로 뱉었던 건 겨우 한 번이었다. 고작 한 번이었지만, 내 말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고 당황한 사람들은 에둘러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아기가 곧 너지. 아기 생각하라는 게 너를 생각하라는거지 뭐.”



나에게 허락된 것들


그들의 말은 오래 마음속에 남아 내 마음을 휘저었다. ‘아기가 곧 나’라는 말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내 안에 그만큼이나 모성이 없는 걸까 싶어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살결 하나 만져보지 못한 아기를 단지 배 속에 있다는 추상적인 느낌만으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건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닐까.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집에 머무르는 올리비아의 시선은 늘 테라스 바깥을 향한다. 그러나 그녀가 바깥을 바라보더라도, 늘 같은 장소, 같은 시선일 뿐이다. 다른 각도로 바깥을 바라볼 수조차 없다. 그저 하나의 앵글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최대의 시선일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오직 파트너 한 사람뿐이다. 임신부 카페에 가입해보면 알겠지만, 많은 임신부가 이 시간을 힘겨워한다. 밖을 원활히 나갈 수 있었고,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있었으며, 해야 할 일들이 있었던 시간과 강제로 분리되어 홀로 집에 남겨졌을 때 그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기껏해야 ‘태교 바느질', ‘태교 음악 감상', ‘태교 영화' 정도가 있을 뿐이다. 많은 임신부가 자신을 ‘남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강아지'라고 표현한다. 올리비아도 이 시간을 끔찍이 힘들어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건 응당 그녀 혼자의 몫인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올리비아에게 친구들이 꽃을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축하의 의미였겠지만, 올리비아의 시선으로는 그것이 관에 누웠을 때 사람들이 다가와 추모의 꽃을 바치는 것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모성성은 한편으로 올리비아라는 자아에 고하는 사형 선고인 것이다.


임신부에게 정말 필요한 것


그러므로 임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태교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 생겨날 엄마라는 정체성, 그리고 아기에 대한 관계성을 사유하는 일이다. 모성이라는 단어는 이 복잡한 문제를 너무나 쉽게 하나로 봉합해 버린다. 생각해보라. 단지 임신을 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엄마'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다. 파트너와 연애를 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반려자가 되기 위해 서로를 맞추어 나가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엄마와 아기에게도 그러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건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나는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고, 따라서 바깥출입이 아직까지 거의 불가능하다. 앉아있는 것조차 할 수 없었기에 늘 누워만 있어야 했다. 누워서 온갖 책들을 읽었지만 배가 불러옴에 따라 그조차도 힘들어졌고, 숨이 가빠져 쉬이 잠들 수조차 없었다. 이 시간 동안 ‘엄마'라는 정체성은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고통의 시간을 더욱 버겁게 만들어주는 단어일 뿐이었다. 


이런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건 많은 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은 내 고통에 공감해주었고, 내 고민에도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기용품을 보내주면서 ‘사실 너의 임신을 축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서두를 연 한 언니의 편지는 오히려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녀들도 모두 같은 시간을 견뎌냈고, ‘내게 과연 모성이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과 더불어 가끔 아기가 심하게 보챌 때마다 아기가 미워지게 되는 그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해주었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개월> 스틸컷



결국, 엄마가 되어서도 나는 ‘나'다. 엄마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강해지거나,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더욱 불안해지고 강박적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설명해주곤 했다. 따라서 임신부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신성성보다는 오히려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보장이 더 필요한,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온 ‘나' 그 자체다. 심리적인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다시금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회적 보장 역시 절실하다. 올리비아가 다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들이 모여 불안감은 증폭되기에 이른다. 


지금 내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내 아이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언젠간 나와 같은 시간을 겪을 수 있다. 그러면 그때 나는 자신 있게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는 너를 위해 ‘나'를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그러나 너를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나'로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음을 네게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말이다. 


<끝>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정보

10개월 Olmo and the Seagull

페트라 코스타, 레아 글롭 Petra Costa, Lea Glob

2015 | Documentary | 82' | Denmark

09. 17. Thu. 17:30 12관

09. 20. Sun. 13:40 피움 톡!톡! Fiwom Talk!Talk! 7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