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움

존재를 확인하는 고백의 시간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5. 9. 25. 17:14

존재를 확인하는 고백의 시간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


무스티


여성의 고백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지금보다 여성 인권에 관련된 목소리가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위 '메갈리아의 딸들'로 불리는 불특정 집단이 웹상에서의 힘을 키워가는 시점에서 개최된 여성인권영화제는 제9회를 맞이하여 '고백의 방향'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이를 통해 고백과 목소리로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매우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제시하였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의 메인포스터는 고백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포스터를 처음 마주했을 때, 글자의 선이 진행하는 방향에 주목했다. 수직의 글자와 수평의 선을 보면서, 이 포스터가 성별로 수직화가 되어버린 계층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 방향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직 사회에 저항하며 수평의 목소리로, 평등을 이루기 위한 고백을 하자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영화제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일상과 투쟁의 나날들',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의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피움 줌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피움 줌아웃: 고백의 이면', '경쟁부문'의 프로그램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첫 번째 섹션인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가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면, 두 번째 섹션인 '일상과 투쟁의 나날들'은 부당한 상황과 감정에 항의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세 번째 섹션인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은 새로운 환경을 마주한 소수자들이 어떻게 미래를 그려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피움 줌인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비의도적일지라도 폭력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피움 줌아웃은 '고백의 이면'이라는 부제를 통해 관습에 반항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의 의지를 전하고 있다. 경쟁부문은 여성의 일상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내면의 고백과 외부에의 고백을 보여주고 있다.


고백을 통해 목소리를 내며 존재를 확인하다


  이처럼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는 고백의 시도와 목소리의 확장, 발언권의 쟁취, 미래에 대한 구상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면서 여성의 고백과 목소리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여성은 그 기여만큼의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작은 목소리는 묵살되기 마련이었고,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발언권을 앗아간다고 해서 목소리마저 잃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백은 중요하다. 자신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행위, 또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행위, 사회에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행위는 여성의 존재와 권리를 사회에 인식시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보내는 신호


  여성인권영화제에 피움뷰어(FIWOM Viewer)로서 활동하기 위해서 한국여성의전화로 사전모임에 참석했던 날, 주최 측에서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섹션의 영화 <리슨(LISTEN)>을 보여주었다.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도 인내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슬람 여성이 고백을 시도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큰 울림을 주었다. 고백을 하고, 목소리를 내어도 아무도 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공허한 고백 속에서 더 큰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고백과 목소리를 내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리슨',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행위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목소리를 낸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는 응원이 되었기를 바란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어떤 여성들은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고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절망 속에서 홀로 견뎌낼 여성들에게, 여기 우리가 귀를 열고 고백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