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움

고백의 방향, 우리들의 방향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26. 02:50

  고백의 방향, 우리들의 방향

―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 닷새 동안의 기록 

 

 

  9월이었고 닷새 동안 잊지 못할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였다. 고백의 방향.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포스터의 타이포그래피가 독특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방향성이 느껴지시나요?” 누군가 질문했을 때 다섯 글자들이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 방향이 가리키는 것과 뻗어나가는 방향의 운동성이 여성에 대한 이해와 권리를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여성의 자유의지로써의 목소리를 틔울 수 있었으면― 여성뿐 아니라 여성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여성에 대한 운동이 남성을 배제하는 운동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여성운동이 열등의식이나 피해의식으로 인식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운동은 우선 여성성, 사회적인 여성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것이지만― 위계적인 권위 ․  권력 구조에서 약자로서 폭력을 받아들이는 모든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시작할 때부터, 내가 쓰는 글은 운동의 형태를 띠어야 했다.

  억압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서 오히려 거기서 벗어나려고 할 때 물의 저항처럼 느끼게 되는 부정적 긍정성들, 좋은 저항들을 억압이라고 느꼈다. 맞기 싫은 생각도 들고 말다툼하다 상처받기 싫고 말이 통할 것 같지 않고 왠지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상황이 끝날 것 같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친구나 가족에게 말하려니 슬퍼지고 죄송스럽고(그 자체로 2차적인 폭력이 되고)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것 같고 굳이 내가 이 사람과 싸워야 할까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 아닐까― 나는 나를 설득하고 나는 나에게 설득 당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용기가 없을 뿐이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런 생각과 느낌들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변화가 생겨야 할까 생각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교육’의 방향성인데, 교육적인 측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되는데 나는 이와 같은 인식이 여성의 힘이나 권리, 자유와 활동성을 어느 정도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스스로를 주장하고 인식시키려는 상황에서 “남자답게 굴어라, 남자는 여자를 지켜줘야 한다, 여자를 괴롭히는 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다(여자가 괴롭힘 당하는 건 남자답고 남자답지 못하고의 문제가 아님에도)” 라는 건 부당하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것,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건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아무런 득도 없는 싸움, 폭력이 된다.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전적이고 여성은 남성에 대해 의존적이라는 인식이 여성을 남성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남성으로부터 전적인 영향을 받는 존재, 남성의 물리적인 힘이나 신체조건이 전적으로 앞서기 때문에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여성을 전락시킨다. 그러나 이는 드러나는 부분에 있어서 전적인 것이다.

 

  여성적 수동성은 가장 깊은 곳에서 능동적이다[각주:1]

  드러나지 않는 부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이번 영화제에서 두드러졌다고 본다. 영화를 보면서 정신적 외상이 생길 것 같았는데―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여성의 문제가 조금씩 사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성에 대해, 여성운동과 여성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성인권영화제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단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별로라는 감상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가지고 말하고 싶었다. 감상이 나쁘단 건 아니지만 주제를 가지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둘 다 잘 하고 싶었다. 적당히 쓰고 넘어가려고 하면 불편해졌다. 그런 불편함이 내가 내 목소리를 외면하려고 할 때 느끼는 불편함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글은 나의 목소리다.

 

  자신의 목소리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 <헌팅 그라운드>의 여대생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고백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들만의 명예> 무슬림 사회 여성들은 자신의 목숨으로 목소리를 낸다. <인도의 딸> 조티는 ‘빛’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침묵에 둘러싸인 여성들을 비추고 <막이 내리기 전에> 주인공들은 자신을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삶 그 자체로서 목소리를 낸다. 인상 깊은 폐막작이었던 <스와니>는 연대와 투쟁으로써.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한 편 한 편 벽돌처럼 쌓이고 정리된 생각들이 기둥을 형성하면서, 내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방을 얻었다. 비록 지붕을 덮지 않아서 바람을 맞아야 하고 비에 젖어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날씨를 모른다. 바깥의 상태, 흘러가는 방향을 알 수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생각의 지붕을 열어두는 마음 같은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여성인권영화제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지속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과 방향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배를 탔다가 내렸을 뿐, 나를 옮겨다 준 건 여성인권영화제의 몫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한 일이 전혀 없는 것 같고― 영화제를 꾸려준 한국여성의전화와 영화제 스텝들과 운동가 분들이 활동해준 결과이고 영화를 만든 감독과 영화, 그 영화를 관람해준 관객들에게 그 힘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여성들과 남성들과 아이들과 노인들과 동물, 자연 모두.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어서, 참여하는 동안 행복했다.

 

 

  1. 이장욱,「아이들, 여자들, 귀신들」중.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