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피움

"당신의 고백은 어디쯤 있습니까?"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2015. 9. 29. 12:19

당신의 고백은 어디쯤 있습니까?”

 

김미정

 

주제가 있는 영화제

이번 영화제의 피움뷰어가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기에 개막식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개막식 이후로 이런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 <더 헌팅그라운드(The Hunting Ground)>는 소위 명문대라 불리며 칭송 받는 미국의 내로라 하는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에 관한 영화이다. 학교 측은 학교 내에서 일어난 문제는 학교 선에서 해결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런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고, 성폭행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밝히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서 이 사실을 숨기며 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 중간중간에 나오는 통계자료들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게 만드는데 충분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났고, 냉담한 태도로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 사회가 미웠다. 그런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제를 당당히 고백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여성들의 용기를 지지하고,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그녀들의 간절함에 자연스레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이번 영화제의 첫 번째 모토인 주제가 있는 영화제와도 일맥상통하게 각 영화들을 각자만의 주제를 담고 있었고, 영화제 전반은 이 주제들을 모두 아우르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고백의 방향이라는 큰 테마를 통해 많은 여성들을 고백을 전달받을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늦게나마 알아챌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번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스크린 속에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통하는 영화제

개막식, 그리고 매 영화 상영 전 트레일러에 나오는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춤은 선물해 주신 소리댄스프로젝트 팀의 공연은 인종, 성별, 나이 등에 관계 없이 영화제를 찾은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더없이 적절했다. 논버벌(non-verbal) 공연인 만큼 오롯이 몸짓으로만 전달되는 감정이기에 신선한 방법이지만 그 누구도 낯설다고는 느끼지 않을, 새로운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헌팅그라운드>, <스와니-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 <결혼전야>, <달팽이관>, <물구나무 서는 여자>, <7년 간의 투쟁>, <마티아스>, <그랜마> 8편의 작품을 보며 나는 이 사회의 이면을 정면으로 보았다. 스크린을 통해,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용기 있는 고백을 해 준 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왜곡된 이 세상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행복하고 나름의 만족스러운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내 생각이 단단히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 동안 이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많이 미안했고, 앞으로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며 꾸준한 소통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즐기는 영화제

이번 영화제에는 다양한 부대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두렵다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그 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말들을 터놓고 고백하는 고백의 방도 준비되어 있었고, ‘고개의 방향이라고 피움족과 참참참을 하여 이기면 상품을 주는 간단한 게임도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나는 행사는 정치의 방향 - 그 입 다물라!’이다. 정치권에 있는 많은 인사들이 했던 말이나 상황들을 소개하는 패널들은 많았지만 특히 그들이 내뱉은 여성 비하 발언들을 보고 있자니 굉장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아직도 아무런 이유 없이 질타 받아야 하는 여성들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는 정치인이 몇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암울하기도 했고 이런 현실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폐막식에서도 즐기는 영화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5일 동안 어찌 보면 무거운 주제들을다룬 영화제였지만 폐막식을 시작할 때에는 프로그램팀 란희쌤과 이벤트팀 재재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랩을 하시고 관객들과 하나되어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를 통해 5일 간의 대 장정을 끝낸 시원섭섭한 마음과 홀가분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

이 영화제는 많은 기관들과 개인들이 힘을 모아 말 그래도 함께 만들어갔던 영화제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올리고, 또 많은 사람들의 박수속에 막을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제에서는 타 영화제와는 다른 특별한 모습들이 많았다. ‘수지엄마의 너무나도 뜻 깊은 축사에서도, 개막식과는 달리 피움족과 관객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폐막을 선언하는 모습에서도, 스크린 뒤편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의 소리 없는 땀방울에서도 같이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도 이번 영화제를 만들어간 한 사람이었다는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많이 설렜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만큼 5일이라는 영화제 기간 동안 배운 것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 사고를 좀 더 넓혀주는 기회가 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행동하는 영화제

힘들 때, “힘내!”라는 말만 툭 던지고 돌아서는 행동만큼이나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힘내!”라는 말과 함께 직접 나서서 문제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행동했다. 연달아 매진되는 영화들을 보며 나는 희망을 봤다. 물론, 매진될 만큼의 작품성 또한 뛰어났지만 이 영화들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행동해 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웃음 지어 졌다.

그 중심에 있는 여성인권영화제가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했다. 피움뷰어로서 영화를 관람하게했고, 글을 쓰게 했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피움뷰어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나는 완벽한 피움뷰어가 되고 싶었지만 능력보다 더 큰 욕심을 발견하는 것 밖에는 안된, 조금은 아쉬운 활동이었음에도 나는 행복했다. 나를 믿고 피움뷰어라는 영광스러운 자격을 주신 한국여성의전화의 크나큰 믿음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과 책임감으로 열정을 가지고 임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손으로, 나의 글로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만큼이나 가슴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가 나를 다시 살아 숨쉬게 했고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나의 정당한 권리들이 보호되고 있음에, 그리고 고통 받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5일동안의 활동을 매듭짓고자 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스무 살 청춘의 9월을 더 빛나게 해주시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한국여성의전화, 그리고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고백의 방향에 마음 깊이 감사하다.

 

당신의 고백은 어디쯤 있습니까?”

주제가 있는 영화제, 소통하는 영화제, 즐기는 영화제,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 그리고 행동하는 영화제라는 다섯 가지 모토를 가진 여성인권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5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여성들의 정당한 고백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눈물과 미소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무시와 차별을 마음 속에 꾹꾹 억누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고백은 어디쯤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