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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이유>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2. 18:29

당신은 이 목소리들을 들어야만 한다 

- <살아남은 이유> 리뷰 -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은


  미국에서 “여성 4명 중 1명은 살면서 가정폭력에 노출된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여성과 아동들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 사실을 쉽사리 드러내거나 신고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살아남은 이유>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이들은 오히려 가해자를 비호하는 사법 시스템과 사람들의 시선에 강력한 반문을 던진다. 가정폭력을 둘러싼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알고 싶다면, 가정폭력 생존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살아남은 이유>를 적극 추천한다.

<살아남은 이유>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60년 동안 폭력적인 결혼 생활을 견딘 샬로타 해리슨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려야 했던 다른 여성들과 아이들의 이야기 또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가장 취약한 자들을 절망에 빠뜨려왔는지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생존자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양육권은 가해 남성의 차지

  미국에서 가정폭력 가해 남성이 양육권을 노리는 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전략이 되었다. ‘가정폭력을 주장하는 여성’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를 주장하는 남성’ 사이에서 양육권 분쟁이 생기면, 법원은 대부분 학대하는 아버지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내 또는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가해자의 70%가 양육권을 얻었다. 사람들은 가정폭력에 대한 성차별적 사법 제도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쉽사리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유>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직접 경험했던 사법부의 문제점을 폭로한다. 캐시라는 한 가정폭력 생존자는 남편이 자신의 아들을 성폭행했다고 신고했지만, 법원에 의해 오히려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파리스라는 또 다른 생존자는 남편 스스로가 아내폭력에 대해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법원에 의해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이 외에도 비슷한 처지를 공유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등장한다.

  많은 캠페인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집을 나오거나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차별적인 사법제도로 인해 “20년 동안 아동 백만 명이 가해자 손에 넘어”간 상황 속에서 여성 생존자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 만다. 가해 남성을 떠나기 위해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양육권 분쟁에서 패소해 아이와 이별하게 된다. 반대로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서 가해 남성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면, 자신과 아이는 계속해서 학대를 당할 것이고 심각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의 사법체계 안에서는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하던 피해자만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도대체 왜 생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일까?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평등

  <살아남은 이유>에 등장하는 생존자들과 전문가들은 교묘하게 설계된 이 함정이 매우 불평등하다고 지적한다. 정의롭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야 할 법원조차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사회통념에 입각해서 판결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피해자의 심정이나 트라우마 반응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비논리적이고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는 동시에,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가능성이 높은 가해자를 더 ‘적합한 양육자’로 판단해버린다. 학대 증거가 확실하더라도 그것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이렇게 많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죽거나 (가해자를) 죽이거나’와 같은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고, 역시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자신의 삶을 극단적으로 위협하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행위이지, 단순한 ‘살인사건’들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놓인 상황을 기존의 ‘남성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법을 집행한다. 과연 이들은 누구의 정의를 수호하고 있는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살아남은 이유>의 인터뷰 중 한 전문가는 “법관은 훈련을 받아도 여성을 탓한다.”고 꼬집는다. 이런 법관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왜 가해자를 떠나지 않았느냐’는 질책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그 법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는 이 질문에 너무 익숙하다. 피해자를 탓하는 질문은 너무나도 게으르고 잘못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학대했는가,’ 그리고 ‘사회는 왜 그 가해 남성이 피해 여성을 계속 학대하도록 묵인했는가,’ 라는 질문들을 던져야만 한다. 생존자를 고립시키지 않고, 실제 가정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질문들을 던져야만 한다. <살아남은 이유> 속 생존자들과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하는 질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