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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갖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들의 싸움 - <넘버원>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4. 02:55

"연못가의 꿩은 먹이를 찾아 헤맬지언정 새장 속에 갇히길 원하지 않는다."


권력을 갖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들의 싸움 

<넘버원>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의정



'유리천장'이 없다고?

일하는 여성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성실하고 똑똑한 여성인 에마뉘엘은 중요한 업무를 척척 해내지만, 회사 내의 입지는 그녀의 능력에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에마뉘엘은 업무능력이 훨씬 뒤떨어지는 남성 동료들의 태클과 맨스플레인에 시달린다. 회사에서 주요 결정권자는 남성이며, 그 연대는 강하다. 에마뉘엘은 가장 능력 있는 직원 중 하나임에도, 무언가 추진하려 할 때마다 설명하고 증명해내야 한다.

    에마뉘엘은 다른 여성들을 만난다.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입장에 처해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영화 속의 일하는 여성들은 성적인 모욕으로 인해 동등한 관계에서도 성별 위계를 느끼게 되고,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단순한 칭찬으로 보일지라도, 여성의 낮은 위치를 확인시키는 말이었다는 것을 에마뉘엘은 안다. <넘버원>에는 '유리천장'뿐 아니라, 남성이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불평등도 함께 그려졌다. 사소하지만 지속적으로 쌓여서 여성의 삶에 유해한 차별들이 보인다. 


"그들은 그녀를 '건방진 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단어로 불리는 여자는 정치적 이력이 있으며 전략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여성입니다."


  권력욕과 성취욕을 가진 여성은 아직도 낯선 존재다. 힘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은 쉽게 반감의 대상이 된다. 많은 여성들이 권력을 차지하기를 망설이고, 적극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도록 격려받지 않는다. 반면 남성들은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또 오르도록 주변의 격려를 받고, 권력을 갖고, 칭찬받는다. <넘버원>은 적극적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여성들을 그린다. 반가운 이야기다.


   힘을 갖기 위해 나선 여성들은 공격을 받는다. 여성들의 약점은 주요 타깃이 된다. 여성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적들의 직접적인 협박만이 아니다. 영화 속 남성들은 여자들을 “후려친다.” 걱정해 주는 것처럼 들리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은근한 ‘후려침‘들로 여자들의 앞길을 방해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더 큰 대가들도 보인다. 이 험난한 과정 속에서, 그 여성들의 입장이 되어 분노하고 마음 졸이며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의 서사에서 유능하고 힘 있는 여성 캐릭터는 '표독스러운 여자'의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어떤 아픈 사연이 있는…' '사실은 나약한 내면을 가진…'것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넘버원>의 주인공은 그런 스테레오타입에 갇히지 않은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아픈 사연'이 있지만, 여성 캐릭터의 '나약한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소비되지 않는다. 다른 여성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성들의 치열한 대화를 목격하는 즐거움도 있는 영화다.


남성연대의 실체는?

  영화에서는 각종 인사(人事)가 당연하다는 듯이 남성들의 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와 함께 부정부패는 갈수록 불어난다. 남성들은 각자의 이익을 따지기 바쁘다. 영화는 남성 중심 사회와 남성연대가 낳는 부정의를 보여준다. 그 남성들의 '우정'을 지적하기도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인 반면,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에 대한 신화는 넘쳐나는 가운데 질문을 던진다. 단단해 보이는 남성의 결속에는 '우정'이 있었나?


“죄송하지만 솔직히, 전 여성의 결속은 믿지 않아요.”

“믿지 않아도 돼요. 이건 종교가 아니라 정치에요.”


여성의 결속을 향한 희망과 질문

  영화에는 강력한 여성네트워크인 '올림푸스'가 있다. 현실에서 여성들이 ‘올림푸스’와 같은 영향력을 가졌던 예는 떠올리기 힘들다. 실제로 여성이 에마뉘엘 정도의 위치에 오르려면 남성 네트워크의 지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유토피아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나아갈 길을 그렸기 때문이다.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여성 연대를 목격하는 경험은 희망을 준다. <넘버원>은 권력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권력 자체에 관한 고민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가 안겨준 질문들 속에서 '넘버원'이 될 여성들과 그 연대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