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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오와 알다나의 미래는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4. 20:49


로시오와 알다나의 미래는

영화 <로시오와 알다나>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8기기자단 은기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이 강조되려면 이들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거나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어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은 끔찍하게 와닿지만 누구도 피해자에게도 미래가 있다고 쉽게 답할 수 없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정말 씻을 수 없는 것일까? 이들의 삶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것일까? 영화 속 로시오와 알다나는 성폭력 피해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에게 피해 당시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짧아지지만 슬픔만은 언제나 되돌아온다.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로시오와 알다나는 슬픔에 갇혀 혼자만의 공간에서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두 사람은 이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예술 수업을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가해자는 로시오를 들판에 버리곤 그의 몸에 불을 질렀다. 피부의 60%가 불에 타, 피부이식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한 로시오의 표정은 밝다. 친구들과 가족의 위로와 응원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로시오가 알다나 앞에서 고백한다. 집에선 씩씩한 아이여야 했고 울어선 안 됐지만, 실은 자기도 울고 있다고 말이다. 알다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다나에게 나아졌다고 했지만 알다나는 어떤 것도 나아지지 않았고 너무 괴로웠다고 울부짖는다.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피해의 상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괜찮아야 했던 로시오와 알다나는 여행과 수업을 통해 자신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자막에 집중하다가 이들의 몸짓을 놓친다면 이들이 전하려는 또 다른 이야기를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춤을 추고 마임과 연극을 하며 몸과 눈빛으로 표현하는 두 사람의 절규를 보고 있자면 눈물과 전율이 동시에 흐른다. 두 사람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그토록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던 고통과 절망의 감정, 그리고 모든 것을 감내했던 그들의 용기와 단단함까지 모두 관객 앞에 쏟아진다.


 로시오를 치료했던 의사는 그가 겪었던 일을 듣고 난 후 오히려 로시오가 깨어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시오가 살아나서 정말 잘 되었다고 확신한다. 로시오와 알다나 모두 피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알다나의 말처럼 지난 일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속 두 사람은 회복과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이들은 과거가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두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있는 피해자다움에도 갇히지 않을 것이다.


 로시오는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알다나는 법정에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없도록 법적 절차를 밟았다. 모두가 로시오와 알다나처럼 괜찮을 수 없고, 또 모든 피해자에게 피해를 털어버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다만 씻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은 없고, 피해자의 삶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우리의 로시오와 알다나는 그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