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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여자가 바꾼다

한국여성의전화 2018. 9. 14. 20:36

말하는 여자가 바꾼다 

- <그녀는 시를 쓴다> 리뷰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로 옆 ‘바레인’이라는 나라에서 3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바레인은 아랍 국가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은 혼자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중동의 사막기후에서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이동권이 박탈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자전거도 타지 못했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온갖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다고 했다. 여성은 투표권도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정치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여성인 내가 ‘직접’ 볼 수도 없었다. 여성 혼자서는 입국 비자도 받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이토록 여성혐오적인 사회가 존속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여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히사 힐랄.


"여성은 사회의 영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사회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시 낭송 하나로 수백만 명의 시청자를 매료시킨 TV쇼 밀리언스 포엣(Million’s Poet)’에 여성 시인 히사 힐랄이 등장하여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는 줄곧 살해위협을 받지만 결국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그녀의 시는 여성을 말한다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의 아랍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밀리언스 포엣(Million’s Poet)’은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는 시 경연 대회이다. 수백만 명이 보며 울고 웃는 이 TV쇼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남성 시인들이다. 그러나 히사는 “여성도 시 경연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진다. 히사가 살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여성이 무대에 선다는 건 ‘도덕적 범죄’와 같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녀에게 주목했다. 아랍 세계에서 시인은 스타이고, 이런 자리에 여성이 나서서 실력을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사는 그보다 더 나아가, 자신이 경험해온 여성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규제를 시를 통해 비판하며 소신을 밝힌다.


그녀의 시는 종교를 말한다


  또한 히사는 이슬람 세계에서 점점 짙어지는 극단주의와 폭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아랍 문화권에서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문제를 과감하게 자신의 시 주제로 선정한 것이다. 극단주의적인 종교문화는 아랍 사회를 고립시키기만 할 뿐, 이슬람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결코 아니라는 시의 내용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무슬림을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여성혐오 범죄자’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거세지고 있으나, 히사의 행위는 이러한 편견이 절대 사실이 아님을 드러내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캅을 입은 여성’이 극단주의적인 이슬람 전도자들과 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결코 모든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자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주목과는 별개로, 히사는 동시에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발언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시를 쓴다


  히사는 시를 통해 말한다. 그녀는 여성 인권과 종교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사회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다. 히사의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가 담긴 <그녀는 시를 쓴다>는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