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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뷰어] 나의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에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3. 02:14

나의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기에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네티즌> -

 

채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흔히 인터넷 공간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여성은 개인정보를 해킹당해 인터넷 상에 자신의 사진이 퍼뜨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반면, 남성은 아무런 두려움없이 모르는 여성에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온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서 혐오와 폭력은 더욱더 많이, 빨리, 끊임없이 퍼부어진다. 그러나 피해를 막아야할 책임이 있는 국가와 기업은 무관심하고 폭력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기까지 한다. 그 속에서 피해자는 고립된다.

 

영화 <네티즌>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네티즌>은 사이버 성폭력 생존자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과 제도적 무관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에 맞서 삶을 이어나가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결국 당신이 얼마나 그걸 신경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이버 성폭력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심각성이 희석되고, ‘성폭력’이라는 이유로 사소화된다.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누가 글좀 쓴다고 해서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지 잘 모르겠네요”, “결국 당신이 얼마나 그걸 신경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라고 쉽게 말한다. 피해자가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넘겨버리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전 애인이거나 친밀한 사이였을 경우에 폭력은 연인 간의 다툼의 문제로, “안좋게 헤어졌나보군요”라는 식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피해는 사이버 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직장을 잃게 만들기도한다. 더하여 스토킹과 같이 실제로 피해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영화는 사이버 성폭력이 생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들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그 심각성에 보다 더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영화 <네티즌> 스틸컷

“지옥 같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자”

생존자 여성은 “지옥 같은 폭풍 속에서 살아남아요.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고, 그저 버티기만하면 폭풍은 지나갈겁니다.”라고 말한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국가와, 피해자에게 비난을 가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꿋꿋이 삶을 이어가며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오드리 로드는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썼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는 살아남아 서로를 지킬 것이라고 소리높여 이야기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의 사이버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심각성과 제도적 문제 등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이 최근에서야 문제시되고, 비동의 유포 불법촬영물은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와 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더욱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게 될 피움톡톡 시간이 마련되어있다. 영화를 통해 문제를 직시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