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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움뷰어] 폭풍우를 뚫고 살아남은 여자들

피움 한국여성의전화 2019. 10. 3. 02:19

폭풍우를 뚫고 살아남은 여자들

- 13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날아오르다> -

 

은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영화 <날아오르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Women Basque Institute

여자들은 왜 모였을까?

어느 날, 난 발코니에 앉아 있었고 갑자기 비둘기가 내 앞에 날아왔어.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고 곧 날아갔어. 멀리 날아가는 걸 보며 내게 메시지를 준 걸 알았어. 자유로워지라고 말하기 위해 왔었던 거야. 마침내 결국 난 그를 신고했어.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이 화면에 펼쳐진다. 차 한 대가 그 자연을 가로질러 달린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 한 마리가 잠시 쉬기 위해 지상에 내리기라도 한 듯, 이내 화면은 차에서 내리는 여자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아 내리는 것을 돕는다. 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나잇대도, 옷차림도 모두 다르다. 이들은 모여 있지 않는다면 한 집단으로 특정 지어지지 않을 만큼 서로 다르고, 또 평범하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이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은 왜 모인 걸까. 영화의 주제를 짐작하기 힘든 순간이다.

그러나 이들이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오며 관객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날아오르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Women Basque Institute

여자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소리' 즉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주어진 게 아니었다. 특히 젠더 폭력과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피해자는 사건 뒤에 물러나 있다. 물론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피해자도 많고, 피해자의 신분은 보호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둘러싼 자극적인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널리 퍼지고, 그 속에서 피해자는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다. 모자이크되고 변조되어 '피해자'로 불리게 된 사람은 '가엾은 희생자' 정도로 그려져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심지어는 사소한 언행들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받기도 한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은 '피해자 보호하기'가 아니라 '피해자 지우기'가 아닌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날아오르다>는 그러한 피해자 지우기에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자극적인 연출이나 요란한 배경음악과 같은 군더더기를 모두 쳐내고 지금껏 은폐되었던 목소리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렇게 드러난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피해자라는 단어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자기검열의 메시지를 주는 반면, 각각의 목소리를 지닌 스크린 속 여성들은 그들 자신을 비롯한 모든 여성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폭력과 재난, 눈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삶과 용기, 행복, 연대,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 이후에도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을 많은 이들은 간과한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건 그 이후에 대하여 이 영화의 여자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것은 폭풍우를 뚫고 나가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미래를 향한 선언이다. 잠시 지상에 머물던 새는 다시 힘차게 날개를 펼쳐 세상 모든 것이 작아 보일 때까지 높이 날아간다. 땅에 발을 디디고 당당히 선 여성들도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